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un 08. 2019

이 말이 그렇게나 못 미덥습니까

긴 글과 리뷰, 비평의 역할에 대한 끼적

영화 평점 플랫폼인 왓챠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영화 <기생충>의 한줄평에 대해 여러 코멘트들이 많이 달린 듯해서 그 내용을 살폈다. 이동진 평론가의 코멘트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였다. 이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인지는 일단 각자의 느낌에 맡긴다. 대체로 코멘트들의 요지는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말들'이라는 것과 '굳이 이런 단어들을 써야 한줄평이 되느냐'라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 영화잡지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가 있지만, 과연 '비평'이 대중들에게 두루 읽혔던 시대가 있기는 했던가. 쉽고 편하게 리뷰를 전하는 유튜브 영화 크리에이터들의 채널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글로 쓰는 리뷰와 비평은 더욱더 그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글쓰기만큼이나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그걸 소비하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글 안 읽는 시대'라는 말을 적는 것도 마치 스스로를 기성세대 혹은 구 세대로 정의하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사적인 경험과 견문들로는 지금이 '긴 글을 안 읽는 시대'라고는 표현할 수 있겠다.


성의껏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었는데 거기에 이를테면 '그래서 재밌어?' 같은 코멘트가 달린다면 나는 그걸 글쓴이에 대한 모욕이자 무시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재밌었다!! 짱잼!!! 인생영화!'라고 꼭 써줘야 그게 재밌는 영화가 되는 것인가. 글은 기본적으로 쓰는 사람의 역량만큼이나, 읽는 이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읽는 사람이 그 글을 통해 뭔가를 얻거나 느끼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노력이 들어가야만 한다. 노력은 곧 생각이고, 특정한 단어나 문장을 쓴 사람이 왜 그걸 그렇게 표현했을지, 흐름과 맥락 가운데 헤아리려는 과정이다. (만약 의미 전달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공감이 되지 않았거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코멘트를 하는 등 필자에게 피드백을 보내면 될 일이다. 간단한 해답.)


"충분히 공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풀어서' '간단하게' 말하기를 경계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는 "한마디로 말씀해주신다면?"이다(유사품은 "간단히 정리해주신다면?"이 있다). 혼자만 아는 세계에 있는 듯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글쓰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만큼이나 간단하지 않은 내용을 간단하게 '오역'하는 글쓰기도 주의해야 한다. 어떤 글은 역량껏 덤벼들어 읽는 독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과학과 수학 문제를 풀 때만이 아니라, 문장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꿰는 데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때가 있다. 어렵기만 하고 재미없는 글 역시 필요할 때가 있다."

(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저 20자 평에 대한 코멘트들을 읽다가 나름의 생각을 홀로 끼적이고 난 뒤, 나는 요즘의 덧글 문화, 특히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존중조차 결여된, 공격과 비방, 조롱에 가까운 '싸움'으로 일관하는 문화에 대해 기존보다 더 강력하게 회의를 품게 됐다. '전투민족' 같은 단어를 본 게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포털과 유튜브, 왓챠 등을 보면 대화라고 보기 힘든 문자들로 넘쳐난다. (그런 덧글을 배설하는 데에 글을 쓰는 종류의 노력이 들어간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해외 네티즌들도 이렇게 서로 비방하고 싸우나'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말이 어떤 이에게는 다소 막연하거나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고 특히 영화 <기생충>을 보지 않았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20자평'이 뭔가. 필자가 그 영화에 대해 어떻게 감상했는지를 (지면 사정상) 한정된 분량 안에 함축해서 담아야만 하는 일종의 요약이다. 그건 그 사람의 평 자체가 되는 게 아니라, 긴 글을 쓰거나 GV 등의 행사에서 풀어낸 그 영화에 대한 상세한 감상과 해설을 단지 짧은 언어를 빌려 축약해놓은 것일 뿐이다. 여러 필자들의 평을 개괄적으로 싣는 한줄평의 기본적인 특성상 어떤 이는 그게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며칠 전에 달린 코멘트들을 지켜보다 약간은 짜증이 섞인 투로, 이렇게 썼다.


본 코멘트에 그렇게 어려운 말이 있는지 여부는 읽는 이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으니 제쳐두고서라도, 처음에 자신부터 타인의 감상에 비난과 조롱에 가까운 멘트를 남겨놓았는데 다른 분에게도 공격적이고 날 선 댓글을 적으신 분이 계신 것 같네요.. (이미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된 듯 보여서 괜히 끼어드는 느낌이긴 합니다만) 한줄평이 자신의 그 영화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모든 걸 다 담아야 할 필요는 없고 그게 반드시 쉬운 말이어야만 할 의무는 없습니다. 궁금한 게 있거나 더 설명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질문을 하거나 라이브톡에선 어떤 얘기가 나왔는지 같은 걸 찾아보면 될 일이고요. 본인이 단번에 납득할 수 있는 말로 쓰여 있지 않다고 비아냥 거릴 시간에 대신 본인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이야기하시거나, 아니면 좀 더 쉬운 말로 적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온전히 적었다면 대화 다운 대화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에게 끼워 맞추려 할 게 아니라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걸 댓글에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건 왓챠에 댓글 기능이 생겼을 때부터 느껴왔지만, 영화 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남겼나 살피러 왔다가 매번 눈살만 찌푸려져 대댓글은 거의 보지 않게 됩니다. 자기 감상과 의견만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일부 사용자들 때문에요. 아무리 글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해도 생각은 누가 저절로 떠먹여 주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왓챠의 모든 사람들이 비평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날 선 '덧글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동시에, 비평가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간의 몰이해가 만연해 있는 건 내가 느끼기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일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일부만의 문제일까? 당장 [씨네21]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오는 주요 피드들(개봉예정작 한줄평, 리뷰나 비평 링크 등)에 게재되는 덧글만 봐도 '대중'이 영화 매체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다. 굳이 캡처하거나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수없이 많이 봤다. 네이버 네티즌 평점란이나 포털 기사 덧글도 마찬가지. 그들 눈에 씨네21은 그저 한겨레일 뿐이고, 비평은 불필요하고 대중과 동떨어진 소위 '허세'나 '지적 허영',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직접 영화를 만들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투털대는' 것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풍경을 보며 나는 그렇게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씨네21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는' 그들이 [씨네21]의 독자인가? 독자로서 필자의 글을 읽고 사유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였는가? 일차적으로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하고 누군가에겐 그게 단지 오락일 뿐이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안다. 한데 이건 특정 필자의 문체나 성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타인의 감상과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비판과 비판이 아닌 것(비난, 비아냥, 조롱 등등등)을 구분할 줄 아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대화와 토론에 있어, 태도는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 남긴 두 개의 코멘트가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옮겨오면서 구두점 표기와 행 구분을 다듬었지만 그 외에는 둘 모두 작성자명을 밝히지 않은 채 원문 그대로 싣는다.)



1. "본인의 지식수준을 대중의 수준이라 착각하지 마시길... 부끄러움을 아는 것도 지식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검색하고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겠죠. 예전처럼 국어사전에서 하나씩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1초면 검색할 수 있는데 추상적으로 쓴 시도 아니고 한자어에 이런 댓글이 달리다니 참. 한줄평도 평론가에겐 자신의 이름을 건 창작물입니다. 일상용어가 아니라서 비판한다 아주 잘 봤습니다. 평론가란 직업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 같네요. 전 이동진 님 한줄평이 좋은 게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영화에 대해 해박한 시직을 가진 지식인에게서 배우는 즐거움도 있고요. 평론가는 대중의 수준에 맞춰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의 수준을 높이는 소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전 이분 한줄평을 현학이니 허세니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 시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도대체 쉽게 풀어낸 글은 어디다 맞춰야 하는 걸까요? 유투브만 보고 있는 초등학생? 언어를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세대에 맞춰서 글을 써야 하나요?"


2. '명징하다', '명확하다', '확실하다', '또렷하다' 전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단어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의견을 적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주 쓰이지 않는 표현을 쓰게 될 때가 있어요. 사람에 따라 그런 표현과 유의어 간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선 그 차이가 큽니다. 영어 단어를 온전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어서 끝내 그대로 써본 경험이 있는 분은 알 거예요. 필자의 어휘력을 떠나서 정말 그 단어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내 말이! 나는 비록 전문기자나 평론가의 수준에 필적하기에는 아직도 가야 할(배워야 할) 길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두 코멘트에 거의 완벽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 말은 모두가 거기 공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주로 매체에 싣는 '20자평'의 특성상 분량상 긴 글로 쓸 것을 축약하고 압축해서 써야만 하니 독자가 보기에 한 번에 딱 와 닿지는 않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리뷰나 비평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대충 한 번 스윽 읽고 와 닿아야만 하는 글이라는 생각은 내게는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이나 한글이나 일제강점기 등 역사 소재 영화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구별하지 못하는 논쟁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연하게도,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나 비판이 그 소재나 역사적 배경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재밌었다' '명작이다' '감동적이다' 같은 단어로 축약할 게 아닌 이상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을 풀어놓는 건 구체적이고 상세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100명이 똑같이 재밌었다 라고 표면적으로 말해도 그 말을 한 100명이 어디서 재미를 느꼈는지나 재미의 정도 같은 건 반드시 100명 모두 다르다.


영상매체의 시대에 글을 쓰는 일은 구시대적인 일인가. 앞서 인용한 이다혜 기자의 책에서는 이런 대목도 볼 수 있다.


"어떤 글은 일생일대의 사고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그래서 읽는 쪽에서도 그만큼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라는 책에서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평이한 글에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쉽게 설명하려면 저자는 많은 독자에게 이미 익숙한 도구를 가져다 쓰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 김은주 씨는 말합니다. "쉬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래된 낡은 집단 안에 깊이 묶여버려,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철학서를 읽을 때든 고전소설을 읽을 때든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하며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읽어봐야 합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글이라면 글을 풀어내기 위해 깊이 고민해봐야 하고, 설령 읽는 사람에게 다소 어려운 글이라 하더라도 도전해보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쉽게 쓰여야 좋은 글이다'라는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어떤 글은, 반드시 어려워야만 그 본연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 그런 글은 읽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사유하며 읽어야 한다. 영화 역시 감상자가 주체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매체임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이를테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전하는 영화 리뷰를 영상으로 보는 일은, 같은 내용을 글로 읽을 때와 달리 그다지 주체적 사유와 능동적 읽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본인 감상 그토록 소중고 온당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것은 그저 '있어보이기'나 '허영', '허세' 같은 단어로 폄하할 줄만 아는 사람의 세계는, 수천 편의 영화를 봐도 결코 넓어지지 않고 발전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태도. 이건 특정 필자의 문체나 성향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존중의 문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만 하는 시대에 이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이 정보의 바다라는 말은, 이런 말을 내포한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찾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취하여야만 그것이 정보가 된다라는 말. 주체적 읽기를 스스로 거부한다면 그에게 정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소비될 따름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모든 대중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글?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글? 모두에게 최소한의 '공감능력'을 바라는 일은 무리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과연 짧은 글이라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에게 '재밌었다!' '명작이다!' 같은 말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누가 "쓰는 사람이 아니면 쓰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라는 이야길 어디서 했는데, 그 말이 문득 공감되기도 했다. 물론 브런치는 한낱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덧글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니 자주 궁금하다. 내 브런치를 찾는 이들에게는 내 글이 어떻게 다가올지. 내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이어야 할지. (2019.06.0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