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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29. 2019

시대의 아픔과 유머를 함께 무대에 담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2019) 관람


영국의 극작가 줄리안 미첼이 쓴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국내 초연을 관람했다. 1982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2년 후인 1984년 영화로도 개봉해 칸 국제영화제 진출(공로상 수상), 이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 후보 지명 등의 성과를 올렸다. 줄리안 미첼이 각색을 직접 한 영화 <어나더 컨트리>(1984)는 배우 콜린 퍼스의 첫 영화 출연작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왓챠 등의 영화 코멘트에는 젊은 콜린 퍼스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커튼콜(5월 26일)


우선, 연극을 이렇게 무대와 멀리 떨어져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R석이었지만 좌석이 무대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거의 맨 뒷줄이었다) 게다가 시공간적 배경의 특성상 1) 교복이나 제복 위주의 의상이라 인물마다 소소한 포인트가 있기는 하나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비슷해 보이고 2) 성별도 모두 같은 배우들이 대부분 연령대도 비슷하고 3) 심지어 멀리서 보면 소수를 제외하면 외모적으로도 배우가 확연히 구분되는 건 아니어서, (이건 아주 멀리 떨어져서 공연을 볼 때 생길 수 있는 한계이긴 하겠으나) (거의) 오로지 말과 행동, 그리고 이야기 전개만으로 캐릭터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봐야 했던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건 물론 사적인 감상이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볼 때는 대부분 소극장이었거나 큰 무대여도 거의 앞줄에서 보았던 경험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삽입된 음악이 분명 아는 곡이라 생각될 만큼 익숙했는데, 연극의 내용 자체는 줄거리에서 짐작한 바와 달리 무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유머러스하고 흥미로운 대목도 적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사이인 193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은 그 어떤 작품에서도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데,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권위적인 시스템과 제도에 반감을 갖고 있는 '가이 베넷'(이동하/박은석/연준석 캐스팅)과 사회주의 체제를 열망하는 '토미 저드'(이충주/문유강 캐스팅)를 주인공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각각 루퍼트 에버렛, 콜린 퍼스가 연기했다)


영화 <어나더 컨트리> 스틸컷. 연극 스틸컷을 마땅한 걸 찾지 못해 영화 이미지로 대체한다.


적어도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소위 '실패한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으므로 <어나더 컨트리>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체제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토미'는 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학교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전파하려 한다. 여기에 겹쳐지는 테마는 동성애인데, '가이'는 동급생인 '제임스 하코트'(이건희 캐스팅)와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던 중 기숙사 선도부 '프리펙트'에 의해 적발된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커튼콜(5월 26일)

비록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관람해 배우의 표정이나 외적인 특징 등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심지어 목소리도 비슷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가이'와 '토미'를 비롯해 하급생 '워튼'(채진/전변현 캐스팅), 기숙사장이자 학생회 '트웬티투' 소속의 '바클레이'(이지현 캐스팅) 등 주요 캐릭터들의 가치관이나 행동 특성 등을 엿볼 만한 개성은 충실히 담겨 있었다. 각자의 소속과 위치, 지향하는 목표가 달랐을 뿐 저마다의 진취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충실한 인물들이며, 누군가는 당시의 통념상 불가능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일을 기꺼이 꿈꾸기도 했다.


'다른 나라'를 뜻하는 제목 <어나더 컨트리> 역시 작품의 많은 뜻을 포괄한다. 규율과 이념에 의한 좌절을 겪으며 어떤 이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쟁(작중 시간대 이후에 해당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타지에 파병을 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가해지는 제약과 통제에 순응하며 살기도 한다.



영화 <어나더 컨트리> 스틸컷

100분의 상영시간은 그 자체로 짧지만 공연을 보면서도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는데, 본 이야기의 앞뒤에 삽입된 어떤 인물의 회상 조의 독백은 이야기의 여운을 충분히 더했고, 공연 후에는 영화화된 <어나더 컨트리>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뤄졌을지도 궁금해졌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경로를 아직 찾지 못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동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적대시되기도 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 불가능하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폄하되곤 하는 어떤 것을 꿈꾸는 사람, 혹은 단지 어린 나날의 꿈과 추억을 아득하게 간직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다가온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 스태프 및 공연 정보



연극 <어나더 컨트리> 커튼콜(5월 26일)


5월 26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브런치 무비패스 초청으로 관람하였다. (5월 26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연극 <어나더 컨트리> 티켓 정보: (멜론 링크), (인터파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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