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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3. 2019

그 영화는 정말 내용이 없나요?

내용이 없다는 말에 대해 잠깐 생각하기

시사회에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옆자리의 한 관객이 일행과 다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그 영화는 내가 수년간 극장에서 안 하던 메모까지 몇 장씩 하고 여러 가지 자료 조사와 생각과 준비를 했던 터라 나름대로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영화였는데, 그 엿들은 이야기의 요지는 "연기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아무 내용도 없다"와 "올해 본 최악의 영화"라는 말이었다. 영화에 대한 취향이나 선호야 개인의 영역이지만 (너그럽게 연기와 노래 실력도 주관적 판단이 적극 개입하는 것이라 치고) 나는 "내용이 없다"라는 말을 우연히라도 들을 때마다 발화자가 그 단어에 대해 의도했을 뜻과 별개로 말 자체의 뜻을 더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문자 그대로의 '아무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기보다는 내용 면에서 별로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심지어 내용 전체를 정말로 단 한 줄로 요약할 수도 있는 <그래비티>(2013) 같은 영화도, 오히려 이야기가 너무나 풍부한 영화에 속한다. 그가 영화를 매 순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감상했는지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과연 감상자가 정말로 그 영화에 대해 되짚어보려 노력했는지에 대해 적어도 한 번은 의심하게 된다.


앞의 이야기는 시사회 작품에 대한 대화가 잠깐 이루어진 뒤에 나온 이야기였는데, 시사회 작품에 대해서는 "초반이 너무 지루했다" 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곧장 다른 영화로 화두가 바뀐 것이었다. 어떤 관객에게 두 영화 모두가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 자체보다도 나는 그가 영화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있어 오락적 재미 자체가 곧 내용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섣부른 추측 같은 것을 잠시나마 했고 곧이어 '내용 없음'의 의미를 곱씹으며 상영관을 나섰다.


같은 영화를 같은 시간에 동일한 상영관에서 봐도 관객들의 감상이 결코 똑같을 수 없는 건, 단지 영상이 초당 일정한 프레임으로 전달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넘어 그것을 실시간으로 인지하고 소화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든 영화 감상의 행위는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능동적인 것이라는 말과도 같다.


프로필에 적은 '영화의 이야기는 보려고 한 만큼만 보인다'라는 말은, 정말로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파헤쳐 살펴볼 만큼의 성취를 하지 못하는 영화도 있기에 어떤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다름의 이유가 어쩌면 '영화가 보여주려 의도한 것' 자체보다는 '관객 자신이 본 것'에 더 가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각자가 본 것이란 곧 '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정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모두에게 닿는 이야기 같은 건 없다고 믿는 게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질문을 만들어본다. 예를 들어 "그 영화에 정말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같은 것. (2019.06.12.)




*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과 관객이 본 것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어서, 그 점은 늘 어렵고 또 서로 상충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소화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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