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Oct 03. 2019

잘 쓰기 위한 태도는, 잘 읽는 태도에서 나온다

내 것을 잘 보기 위한 남의 것 잘 보기


영화에 대해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글쓰기를 위한 바람직한 태도라는 건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태도(態度)'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1) 몸의 동작이나 몸을 가누는 모양새. 2)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 3)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에 대해 취하는 입장. 요컨대 자세와 입장이다. 태도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 말은 '좋은 태도'에 대해 단지 간단한 말들로만 정의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 긴 정의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내 것이 좋기 때문에 남의 것이 나쁘다가 아니라,

내 것이 나에게 좋은 만큼 다른 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은 소중하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의견 역시 마찬가지다. 그 소중함의 이유는 '나'여서가 아니라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서다. 말장난 같은가? 전자는 자기중심적 태도고 후자는 나와 누군가의 차이를 고려하는 태도다. 후자는 첨언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경험한 것' 뿐이지, 내 옆사람이 나와 같은 영화를 같은 시공간에서 만났다 해도 그 고유한 경험은 다 알 수 없다. 나는 끝내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완전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은 소중하기는 하지만 옳은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읽다 보면 이 '최소한의 태도'가 결여된 말들이 많이, 정말 많이 눈에 띈다. 가령 '이 영화 난 너무 별로였는데 재밌게 봤다는 사람은 다 알바인가' 같은 툭 뱉어낸 말들. 누군가의 감상평에 대해 뱉어내는 '돈 받고 썼네' 같은 짧은 생각들. 지금 소개한 예시는 모두 자신의 것만 중요시하고 남의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사고에서 기인한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 페이지에서 10점 척도 기준 예외 없이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건 1점과 10점이다. '꿀잼이면 10점', '노잼이면 1점'이라는 의미다. 영화가 이차방정식도 아니고 '영화를 보는 방식'에 정답이 존재할 리 만무한 데도 사람들은 '취향 존중'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 존중을 타인에게 적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로서 영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것이 과연 앞에서 말하고자 하는 '태도'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일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가치 추구가 나만의 것이라 여길 때, 타인의 의미 추구를 생각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에 대해 유명 영화평론가가 남긴 한줄평이 화제가 되었던 적 있다. (이미 이 '명징 직조 논란'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짧고 긴 글을 쓴 바 있지만 잠시 더 언급하기로 한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한데 화제는 한줄평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이 한줄평에 대한 반응의 상당수를 차지한 것은 '사용한 단어가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선호하는 작가와, 유려한 문장력과 수식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가 있으므로, 구사하는 어휘와 표현의 범위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단 '한줄평'이 특정 매체나 플랫폼에서 요구하는 한정된 분량에 맞춰 평자의 감상을 축약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비평'이 단순한 생각과 의견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고도 치밀하게 고민하고 탐구하여 도출해낸 분석과 주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 역시 논외로 삼는다고 해도, 위 한줄평에 대해 모 영화 추천 서비스의 덧글에 달린 말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평론가의 표현이 곧장 와 닿지 않는다는 불만으로 보일 뿐이었다. 평론가는 '대중적인' 표현을 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특정 대상에 대해 전문지식과 탐구의식을 바탕으로 논평을 하는 사람이다. 글이 반드시 쉬운 단어로만 쓰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감상을 표현하는 데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같은 단순한 단어 외에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누군가 공들여 생각하고 쓴 것을 노력 없이 받아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쉬운 말로 해달라'거나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쉬운 단어가 아니므로 평론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라고 쉽게 말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태도는 '왜 이런 단어를 사용했을까' 하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태도다. 스마트폰을 통해 아주 간단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전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온라인 공간의 덧글에서는 타인이 공들여 생각하고 분석, 정리한 것에 대해 그 노고를 헤아리려는 사람보다는 그저 쉽게 얻으려는 사람이 훨씬 더 자주 보인다. 영화 <기생충>에 대한 상술한 한줄평에 대해서도,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보려는 반응보다는 그저 '허세'로 폄하하는 반응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기록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다른 사람의 표현에 대해서 쉽게,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 것. 잘 기록하는 사람은, 쓰는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읽는 것까지 잘해야만 한다. 누군가의 표현을 두고 비판 없이 비아냥과 비난밖에 표출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좋은 기록이란 탄생할 수 없다.


앞에 쓴 '영화의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에서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나는 아직도 '좋은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정하게 정리된 나만의 답을 찾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내 것이 나에게 좋은 만큼 다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좋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언제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겸허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겸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읽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글 쓰는 일'과 '책 읽는 행위'의 고상함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게 물론 아니다. 좋은 기록의 태도란 다른 이의 기록도 존중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만 나만의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고유함을 아는 사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고유한 견해가.


아직 문제는 남았다. 과연 타인을 향한 존중의 마음만 있다면 좋은 기록을 쓸 수 있는가? 여기에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수학 문제처럼 해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고 해서 모든 답이 그 자체로 옳은 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 말에 대한 부연을 위해서는, 이제 '좋은 답'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야 할 차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