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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6. 2019

영화의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영화 기록의 의미 찾기


‘영화 기록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대해 쓰겠다고 했으니 먼저 ‘영화 기록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 영화 기록이란 무얼 뜻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겠다. 일차적으로는 글자 그대로 영화에 대해 기록하는 일. 여기서 영화는 기록의 대상이 된다. 이건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일정한 분량이나 양식에 따른 글을 적는 것만이 아니다. 간단하게는 이전 글에 적었듯 소셜미디어 계정에 “나 이 영화 봤다”라고 게시물을 올리는 일도 기록이다.


물론 특정 시기에 특정한 영화를 관람했다는 사실 자체가 훗날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하지만 그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이 글에서 쓰고자 하는 ‘무엇’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게 그 영화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 좋아하는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었던 영화, 너무나도 내 이야기 같아서 사소한 것까지 공감되었던 영화. 가치 있는 기록은 구체적인 기록이다. 마지막 장면이 왜 기억에 남았는지, ‘내 이야기 같았다’는 건 무엇인지, 그 배우를 왜 좋아하는지. 기록은 끝없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영화 기록’의 의미는 이렇게 정립해두기로 하자. 영화에 대해 기록한다는 것은, 내가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들, 즉 의견이나 감상에 해당하는 모든 것들을 문자의 형태로 정리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무엇’이나 ‘어떻게’, ‘왜’, ‘얼마나’ 같은 항목들이 필요하겠다. 앞에서 열거한 것들은 다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 장면을 말하자면, 그 영화는 내게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을 만큼’ 좋았던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을 왜 잊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자연히 후술 될 것이다. 그 장면이 하필 다른 장면들보다 더 기억에 남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그 마지막 장면이란 어떤 방식이나 의도로 구성 및 연출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쓰면 좋겠다.


가치 있는 기록은 구체적인 기록이라고 스스로 썼으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누적 관객 940만 명을 기록하며 여름 성수기의 최고 흥행작이 된 영화 <엑시트>를 생각하자. 의문의 유독가스가 도심에 퍼져, 컨벤션홀에서 칠순 잔치를 벌이고 있던 ‘용남’(조정석)의 가족들은 갑자기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산악 동아리 활동을 했던 ‘용남’과 컨벤션홀에서 일하는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의 재치로 가족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 헬기에 탑승하지만 헬기가 실을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해 ‘용남’과 ‘의주’만 옥상에 남겨진다.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인근의 더 높은 건물로 올라온 두 사람. 근처를 지나는 구조 헬기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때마침 두 사람은 건너편 저층 건물에 있는 보습학원 안에 갇힌 어린 학생들을 발견한다.


혹시나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독자가 있을 것이므로 영화의 기본적인 전개에 대해서만 축약해 설명했다. 영화 <엑시트>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학생들을 발견한 ‘용남’과 ‘의주’는 고민 끝에 마네킹 등으로 헬기가 볼 수 있게 학원을 향해 화살표를 만들어, 구조 헬기가 자신들 대신 학생들을 구출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자신들을 희생해 대신 다른 사람을 구하는 헌신의 영웅담인가? 내게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왜냐면 ‘용남’은 “취직하면 사무실이 높은 곳에 있는 회사로 갈 것”이라며 울며 ‘의주’ 역시 부점장이라는 직업적 사명 때문에 손님들(곧, ‘용남’의 가족들)을 먼저 헬기에 태웠지만 엄마를 외치며 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요컨대 영웅심과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유독가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벽을 타고, 또 달리던 이들이 자신 대신 다른 사람을 먼저 살리기까지 영화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여기서 <엑시트>의 리뷰를 쓸 것이 아니므로 자세한 말을 아껴야 하겠지만, 이 영화가 단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산악 동아리 활동도 쓸모가 있다는 훈훈한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누구의 삶이든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상업영화가 할 수 있는 바람직한 교훈을 담아내고 있다고 판단한 중요한 계기가 바로 조금 전 언급한 장면이었고, 그렇기에 다른 장면들보다 더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다. 어떤 사람의 삶이 가치로 빛날 때 그건 반드시 수퍼히어로 같은 초인적인 능력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은 주로 타인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용남’과 ‘의주’에게 그 타인이란 곧 건너편 보습학원의 학생들이다. 생존의 위협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 대신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영화 바깥의 우리 삶에도 있다면, 세상은 좀 더 희망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했다.


지금까지 쓴 건 영화 <엑시트>에서 특정한 장면이 내게 왜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엑시트>에 있어서 중요한 무엇이란 내게 하나의 장면이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처한 상황 자체가 재난이야”라는 영화 속 어떤 인물의 말 한마디가 각인되었을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나도 암벽등반 배워둬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재난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이렇게나 웃긴 코미디였다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 편의 영화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의 ‘무엇’은 반드시 다른 것이다. 똑같은 장면이나 대사, 소재에 대해 기록한다고 해도 나와 완전히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실은 똑같은 ‘무엇’이란 없는 거다. 영화에 대해 기록하는 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무엇'이라는 건 홀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모두의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전제로부터, 영화의 '무엇'을 찾는 과정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서부터 기록은 출발한다. 이것은 좋은 기록을 하기 위한 태도다. 태도에 관해서라면 또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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