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Sep 12. 2019

'나 이 영화 봤다'와 '당신도 이 영화 보세요' 사이

다만 1인분에 불과할 영화 기록에 관하여


"기록은 쓰는 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안정희,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에서)


무엇인가에 대해 기록하는 일은 독자가 몇 명이든 간에 일단 쓰는 사람 본인을 위한 일이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은밀한 글도 특정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다. 그러니 본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면 일단 글을 써야 한다. 아무 소음도 없이, 혹은 알맞은 배경 음악과 함께. 키보드 타이핑 소리 혹은 노트에 펜촉이 닿는 소리와 함께.


한데, 글쓰기가 쓰는 이의 마음'부터'가 아니라 겨우 쓰는 이의 마음'만'을 겨우 어루만질 수 있다면 어떨까? 글을 통해 표현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다고 할 때, 그 글은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 그 자체인 게 아니라 글로써 표현된 무엇일 뿐이다. 그러니 내 진심을 어떤 왜곡도 오해도 없이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소통 자체가 무용하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조금이라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내 뜻을 전할 수 없고, 대충 해서는 내 의도가 잘못 전해지기 때문에.


나는 지금 말이 아니라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진심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는 글쓰기의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글쓰기가 쓰는 사람 본인의 마음만을 겨우 어루만질 수 있다고 가정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글이 쓰이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어루만져진 마음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마음과 대화를 나누길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 대화는, 누가 더 잘났고 대단한지를 겨루는 것인가? 아니, 공감이다. 당신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겠구나. 어떤 면에서는 나와 당신의 생각에 닮은 구석이 있겠구나.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는 의견과 취향을 같이하는구나. 하는 것들을 함께 느끼는 일이 바로 공감이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연평균 횟수는 2018년 기준 4.18회다. 2017년의 4.25회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이는 2013년 이후 줄곧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서) 물론 국민 전체 평균이므로 한 달에만 극장에 열 번 정도 가는 나 같은 관객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여기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이야기 한 건 영화가 글쓰기에 있어 꽤 만만한 '글감'이라는 점 때문이다. 꼭 지면이나 매체에 기고하는 전문가의 글만 '영화 글'인가.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에 사람들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해시태그를 달아서 후기를 남긴다. 소위 '존잼' 같은 축약어에서부터 정제된 리뷰 형태의 글에 이르기까지. 해시태그를 찾아보면 영화 포스터나 전단 혹은 멀티플렉스 극장 안에 설치된 대형 피겨, 아니면 관객 본인의 '셀카'에 이르기까지 글만큼이나 사진도 다양하다. 그렇게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뭘까? 수많은 극장 개봉 영화 중에는 몇 백만,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형 히트작도 있고 불과 1만 명만 동원해도 '기적'이라 평가받는 작은 인디 영화들도 있다. 어쨌든, '나 이 영화 봤다' 하는 일명 '인증샷' 같은 게 후기의 주된 이유가 아닐까.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하는 영화가 있는 건 그만큼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고, 그건 그 영화가 적어도 동 시기에 유행하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 수많은 후기를 여기서는 '영화 기록'이라 통칭하기로 하자. 단편적인 감상에서부터 일정 분량을 넘는 리뷰나 에세이, 혹은 비평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형태 및 양과 질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관객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 후기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그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거나 느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재미있었거나 재미없었거나, 감동적이었거나 지루했거나, 공감되었거나 슬펐거나 하는 간단히 축약된 것에서 시작해 영화 기록은 점차 구체적인 곳으로 향한다. 특정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거나, 혹은 어떤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거나, 주인공의 어떤 행동에 공감했다거나.


'다른 사람들도 읽는 책'이라는 안전한 선택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처럼 영화에 대해 공개된 기록을 남기는 일 역시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영화 선택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내 친구도 본 영화'라는 점에서부터 '그 친구가 재미있다고 말해준 영화'라는 데 이르기까지. 이는 앞서 적은 것처럼 '나 이 영화 봤다'라는 것 외에 어떤 내용도 담기지 않은 기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이것이 '너도 이 영화 한 번 볼래?'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꼭 상대에게 추천사처럼 그 영화의 장점에 대해 피력해야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요컨대 '나 이 영화 봤는데 어떠했다'라는 생각과 감정을 적시하는 일 자체만으로 그걸 읽는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정보가 된다. 그 영화를 나도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 영화는 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보. 정보(情報)정서(情緖)는 '뜻'(情)을 공유한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정서를 공유하기도 하는 일이다. 입에서 나와 귀로 가는 말에 비하면 글은 좀 더 암묵적이면서 '쌍방이 아닌'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럼에도 어떤 글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언의 대화가 된다.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런 영화가 있는데 당신도 한 번 볼래요?" 하는 청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나 이 영화 봤다'와 '당신도 이 영화 보세요' 사이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라도 숨어 있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당신도 한 번쯤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영화 기록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전 02화 당신도 영화에 대해 쓰는 사람이면 좋겠어, 앞으로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