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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5. 2019

슬픔,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감정

[블랙미러] 시즌2 에피소드 1로부터

치밀하고 서늘한 냉소와 풍자로 이루어진 [블랙 미러]에서 드물게 슬프고 처연한 에피소드라고 칭해도 될까. 헤일리 앳웰과 도널 글리슨이 출연하는 [블랙 미러] 시즌 2의 1화 'Be Right Back'. 소재 면에서는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2013)나 알렉스 가랜드의 <엑스 마키나>(2015)를 떠오르게 하지만 본 에피소드는 주인공의 지워지지 않는 슬픔과 상실감을 내내 떠안는다. 누군가의 생전 말투와 행동, 외모 등을 완벽하게 재현한 존재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그 '누군가'가 아니라는 것. 삶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잃게 되었을 때, 그때 생겨나는 비통함은 절대 그것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깨진 유리 조각들을 합쳐서 되붙여 놓아도 균열이 사라지지 않듯, 으깬 감자와 케첩을 다시 분리해낼 수 없듯(영화 <미스터 노바디>(2009)로부터) 비통한 마음은 결코 온전히 봉합될 수 없고 우리는 다만 비슷한 종류의 상반된 감정 - 그러니까 또 다른 사랑이라든가 혹은 큰 기쁨을 주는 일이나 일생의 또 다른 성취 같은 것들 - 을 통해 새로운 마음을 덧입히고 과거를 희석해나갈 뿐이다. "금방 돌아올게" 같은 말이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쉽사리 짐작할 수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누군가는 평생 겪어야만 한다. (2019.06.24.)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신철규, '유빙' 부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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