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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2. 2019

스치는 작은 것들에도 한없이 쓰이는 마음

길 위의 생명을 바라보는 마음

철공이가 며칠간 보이지 않았고 밥그릇도 계속 비어 있었다. 머물던 박스도 없어졌고 밥을 챙겨주는 분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사정은 몰라 계속 궁금해만 하던 차에 어젯밤 귀갓길에 철공이를 보았다. 그런데 평소 있던 곳이 아니라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랑 마주치자 몇 초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울면서 내 앞으로 왔다. 밥은 먹었을까.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겠지. 원래 있던 곳으로 가게 해야 하나 거기 그대로 둬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집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그 길을 계속 따라와서 결국 한참을 같이 걸었다. 중간에 만난 회색냥(한동안 정밀이라고 추정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은 철공이가 크르릉거리자 뒤쪽으로 물러났다. 싸웠나? 아니면 애초 친구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사는 원룸 건물 로비까지 따라오는 걸 따돌리지 못하고 로비 출입문을 닫았다. 집에 가서 츄르 하나를 들고 내려왔다. 내려오니 또 어디 갔는지 안 보여서 찾다 보니 근처 쓰레기봉투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약간 턱이 있는 화단이었는데 거기서 내려오질 않아 강제로(?) 내려오게 했다. 품에 안지는 못하지만 한 손으로 앞발과 가슴팍을 안고 들어 올리는 내 손을 철공이는 피하지 않았다. 밥그릇이 있는 곳으로 가 거기에 츄르를 짜 놓고는 근처 편의점에 다녀왔는데 계산을 마치고 나가니 거기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밥그릇 옆에 빈 물그릇에다 생수를 사서 따라주었다. 길고양이들이 물을 잘 안(혹은 못) 마신다는데 정말이었다. 아예 작은 사료를 하나 사서 물그릇에 풀어뒀더니 물과 사료를 같이 먹기는 했다.


작은 생명을 보는 일은 마음이 아프다. 만약 철공소에서 더 이상 밥을 챙겨주지 않는 것이라면? 박스가 더 이상 새로 놓이지 않는 건 어쩌면 그걸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철공이는 알아서 먹을 것을 잘 찾아 해결할까? 사람이 주는 사료나 간식에 길들여져 자립하지 못하진 않을까? 쓰레기나 상한 음식 같은 것을 뒤적거리다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다. 지나가면서 철공이가 잘 있나 확인하고, 있던 자리에 안 보이면 주변을 조금 걸어 다닐 것이고, 있으면 가끔씩 사료나 간식을 놓아두는 것 정도. 만져주는 것도 너무 오래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늘었다. 이제는 그냥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나'를 알아보는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는데, 내 귀가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행여나 내가 지나다니는 길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철공이를 처음 만난 건 겨울이다. 두 번의 계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몇 개월이나 흘렀다. 처음 보았을 때 저 또릿또릿 하고 강한 눈빛을 봐! 너는 어딜 가든 잘 살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본 철공이는 울음소리가 너무 작았다. 전보다 더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정이 든다는 건 그런 것이다. 집에서 철공이가 있는 곳을 보려면 편의점 쪽으로 가야만 하는데, 편의점에 가지 않을 때도 나는 굳이 동선을 더 길게 만들어 철공이가 있는 자리를 한 번 살핀다. 거기 잘 있으면 나도 안심이 되고 거기 없으면 어디 갔나 궁금해지게 된다.


형은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를 2년 정도 키우다가 이사를 하면서 환경이 크게 바뀔 걸 우려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냈다. 철공이가 내 손을 안 피하고 심지어 들어 올리는 것도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집에 데리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귀여워하고 정 좀 들고 친해졌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생명을 대하는 일은 전적으로, 아니 반드시, 책임감이 있어야만 한다. 그건 마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원룸 로비에서 출입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나를 계속 보고 있던 철공이 얼굴은 내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종류의 모습이었다. 슬퍼진 마음으로 집에 와 나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심야영화의 리뷰를 쓰고 잠이 들었다. 철공이는 다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계절을 보내는 일은 스치는 작은 것들에도 한없이 마음을 쓰게 만든다.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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