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한창인 영화 <본드 25>(가제)는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의 역할이 라샤나 린치(<캡틴 마블>에 '마리아 램보' 역으로 출연했다)에게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포털 뉴스 등의 덧글 반응은 예상대로 라샤나 린치가 '흑인 여성'임을 문제 삼는 내용들로 가득해졌다.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 캐스팅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007'은 백인 남성이어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그래 왔다"라고 함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와는 전혀 관련 없으며, 후자에 당위성이 있을 수 없는 건 물론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동시대의, 이야기 밖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 아무리 '잘 만든 이야기'도 결국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므로 끊임없이 현실로부터 가치관과 이야깃거리를 수용하고 스스로 변화해야만 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다. '그동안 봐온 것'은 단지 '익숙한 것'에 불과할 뿐, '그래야만 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원작이나 전작은 '고증의 대상'이 아니다. 변화를 배척하는 건, 스스로를 오늘과 내일로부터 도태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만약 영화에 대해 정말 비판할 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이야기하면 된다.) (2019.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