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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25. 2019

비밀은 늘 생겨나지만, 그걸 영원히 감출 수는 없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2018) 리뷰 &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컷

비밀은 타인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않으려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면 비밀 유지의 방법은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닐 때가 있지만) 그냥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라 할지라도 둘 이상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그건 영구적인 비밀이 되기 어렵다. 여러 편의 장편을 통해 늘 주목받고 있는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Todos lo saben, 2018)은 거기서 시작한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궁금해질 만한 영화다. 누구나 알면 그건 비밀이 아니니까.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아르헨티나에 산다.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스페인에 오게 되고, 몇 시간씩 이어지는 스페인 결혼식의 전통을 반영하듯 파티는 늦은 밤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갑자기,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없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우라'에게 전해진 문자 메시지. '딸을 데리고 있다, 경찰에 알리면 딸을 죽이겠다'라는 발신인 미상의 문자로 축제 분위기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여기까지 간추린 줄거리는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도입에 해당한다. 제목만으로 이미 관람 전부터 유추할 수 있는 바는 본 영화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상대로 벌이는 가족의 사투 혹은 추적극을 표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상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적중한다. 여러 면에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애초부터 범죄 드라마를 만들 생각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컷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처음 이란을 떠나 스페인에서 촬영한, 마드리드에서 불과 한 시간 이내로 떨어진 공간적 배경은 비밀이 유지되지 않기에, 즉 소문이 빨리 퍼지기에 딱 좋은 곳이다. 동생과 자녀들과 함께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라우라'는 도로 곳곳에서 차창 밖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대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이라는 이야기다. 이후의 여러 장면을 통해서도 영화의 공간은 말이 빨리 퍼질 만큼 작은 지역사회라는 바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에 사는 농장주 '파코'(하비에르 바르뎀)가 '라우라'의 오랜 친구이자 옛 연인이라는 점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변수가 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사건보다 그 사건을 대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사건 이후의 모습이 더 중요한 영화다. 이모의 결혼식에 놀러 온 소녀의 실종을 두고, 처음에는 단순히 경찰에 신고해야 할지 말지 정도의 고민거리에서 출발하지만 '라우라'와 가족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납치범이 누구인가'보다 가족의 지난 일을 둘러싼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다.


따라서 영화의 중후반을 이끄는 동력은 실종 사건의 정확한 내막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막연한 의심을 받게 되는 일, 그리고 이 가족을 둘러싼 오래된 비밀이 조금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각각의 당사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표정들에 있다. 관객이 품을 법한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가 스크랩한 신문기사 속 그 소녀는 누구인가? 소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우라'의 딸 '이레네'를 납치한 건 누구일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컷

앞에서 제목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안다면 그건 비밀이 아니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 결국 밝혀지게 되는 비밀은, 정말로 '알려진 비밀'이 된다. 숨기려 해도 신발에 묻은 흙처럼 숨길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족을 둘러싼 비밀이 알려지는 순간 영화의 종장에서는 새로운 비밀이 하나 생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있는 내막이 밝혀지고 나서 어떤 사람의 대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대화에서 영화의 카메라는 조금씩 그들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 "얘기 해."라는 이후 그들의 대화 내용은 관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자연히 <누구나 아는 비밀>은 관객에게도 질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당신이라면 상황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있겠습니까? 라든가. 혹은, 십수 년 과거의 선택을 당신이라면 이해할 있습니까? 같은. 지나간 사건이라 해도, 10년, 20년도 지난 일이라 해도 누군가는 그걸 잊지 않았을 있다. 혹은 머리로 잊었다 해도 사건 이후의 파장으로부터 쉽사리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처음부터 의도된 이야기의 흐름이 (혹은 처음부터 '실종 사건의 단서 추적'에 전념할 생각이 없었을 영화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만큼의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관객들이 영화 속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가족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또 하나의 비밀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국내 포스터

<누구나 아는 비밀>(Todos lo saben, 2018),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2019년 8월 1일 (국내) 개봉, 133분, 15세 이상 관람가.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스, 리카도 다린, 바바라 레니, 인마 케스타, 엘비라 민구에즈, 라몬 바레아, 칼라 캄프라, 세르지오 가스텔라노 등.


수입: 오드

공동배급: 오드, 티캐스트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스틸컷

(★ 7/10점.)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7월 24일, CGV 압구정)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예고편: (링크)



시사회 여담.


1. 아쉬가르 파라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예컨대 '언어의 장벽'이라 부를 만한 게 있다. 두 인물이 서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혹은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주변 소음으로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 등을 그리 칭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도 그런 장면을 하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등장하는 언어의 장벽은 이 경우 두 인물 사이를 막는 게 아니라 두 인물과 관객 사이의 정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며, 전작에서와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2. 영화 중후반에 이르러 밝혀지는 그 비밀이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달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특히 직접적인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근간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큰 의미를 지닌다. 물론 아이의 실종을 그린 영화를 볼 때 일반적으로 기대하거나 예상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딸의 실종은 가장 행복해야 할 경사스러운 날에 아무도 바라지 않을 만한 갑작스러운 상황이 분명하고, 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 동안 '라우라'와 남편은 물론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도 결혼식날 밤의 축하 분위기는 일순간 사라지고, 모두가 침통해진다.


3. 아무리 이게 영화고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라지만, 이것이 대체 웃을 상황인가. 유머가 담긴 장면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유머가 아니어도 문득 혹은 순간적으로 웃음이 났을 수는 있다. 그러나. 타인의 비극을 보면서 한두 번도 아니고 보는 내내 코웃음을 치며 실시간으로 '리액션'을 한다는 건, 몇 년 동안 겪어온 여러 가지 '관크'의 상황들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다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대체 이게 그렇게 웃기세요?라고 영화가 상영 중인 내내 소리치고 싶었다.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 '미소를 지으며 볼 만한 장면이 내게는 거의 없었다'라는 건 물론 사적인 기준임을 안다. 다만 감정에도 상황이 있고 맥락이라는 게 있다. 오늘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를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극장을 나섰다.


4. 관람 문화라는 게 나라별로, 상황별로 다를 때가 있다. 그건 분위기를 좌우한다. 국내에서도 '리액션 상영회'나 '싱어롱 상영회' 같은 게 있는 건 그래서다. 적어도 그 상영관에서만큼은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말은 그런 상영회가 아니라면 극장은 '조용히 보는 곳'이 일반적인 경우라는 의미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리뷰를 쓸 때도 비슷한 이야길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극장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곳이지 '말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표현'하는 것에도 상황을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경우엔 그런 걸 '눈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5. 영화에는 "당신 딸이 사라져도 그렇게 (반응)할 거야?"라는 대사가 있다. 타인의 언행에 대해서 그 사람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생각을 누군가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목구멍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 된다. 언젠가 "어떤 현상을 보고 단 1초의 생각할 여유도 가지지 않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라고 쓴 적 있다. 오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꺼내기 전에 재고하지 않은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배설이다. 좋은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마치 다른 나라에 있는 기분이었다.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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