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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29. 2019

'스타 이즈 본'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것

'앨리'와 '잭슨'의 관계로부터

영화 <스타 이즈 본>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것에 관한 생각


*영화 <스타 이즈 본>의 결말에 관한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영화 <스타 이즈 본>(2018)은 5분 남짓의 엔딩 크레딧 부분을 제외하지 않더라도 거의 비슷한 분량의 전반과 후반으로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1부에서는 ‘앨리’(레이디 가가)가 록 스타 ‘잭슨’(브래들리 쿠퍼)을 만난 후 사랑에 빠지는 한편 가수로 데뷔하고, 2부는 이미 알코올과 약물 중독 문제를 겪고 있던 ‘잭슨’이 끝내 재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그를 추모하는 ‘앨리’의 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앨리’가 첫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정식 데뷔 후에는 ‘SNL’에 출연하는 점 등의 현대적 요소를 제외하면 원작(들)의 구조를 대부분 바꾸지 않은 <스타 이즈 본>은 수많은 반복과 변주 요소들로 가득한데, “음악이란 12개 음을 가지고 옥타브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방식대로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라는 ‘잭슨’의 말은 그래서 고스란히 영화의 주제처럼 들린다. 감독 브래들리 쿠퍼는 나온 지 80년도 넘은 이야기가 여전히 성공할 수 있음을, 익숙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도 충분히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전반과 후반의 상반된 전개는 캐릭터의 활용 면에서 장단점을 모두 드러내는 것 같다.


분량 면에서 전반과 후반은 모두 1시간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전국 투어 공연처럼 실제 시간 소요는 비슷했을 만한 지점에서도 전반에 비해 후반의 흐름은 더 가파르게 느껴진다. 완만하게 올라간 곳을 내려올 땐 더 급격하게 내려오는 형태다. 즉 ‘앨리’가 스타가 되는 과정보다 스타였던 ‘잭슨’이 재기하지 못하는 과정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비록 ‘잭슨’의 극단적 선택이 마지막 신에서 노래하는 ‘앨리 메인’의 감정적 폭발력을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지만, 영화가 두 주인공 사이에서 고르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한 번쯤 의문을 갖게 한다. ‘앨리’의 첫 공연 곡이 된 ‘Shallow’는 ‘잭슨’이 편곡해 완성했으며 매니저 ‘레즈’(래피 가브론)가 마음에 들어 했다는 ‘Look What I Found’ 역시 ‘잭슨’을 만난 후 만든 곡이다. 요컨대 ‘앨리’는 가수로서 탁월한 재능은 이미 지녔지만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것을 불편해 했던 인물이므로, 그녀가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것, 즉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잭슨’ 덕이다. 전반부는 두 아티스트가 서로의 삶을 통해 감정을 교감하며 그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충실하게 담는다.


반면 ‘잭슨’의 중독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후반에 가면 영화는 ‘잭슨’의 ‘노래하는 모습’을 일부러 생략하거나 축소한다. 영화상 세 번째로 등장하는 그의 대표곡 ‘Maybe It's Time’은 전주만 등장하며 ‘앨리’가 작곡해 ‘잭슨’이 처음 피아노 앞에서 불러보는 ‘I'll Never Love Again’ 역시 ‘잭슨’의 사후에만 몇 소절 짧게 삽입된다. 이제 ‘잭슨’에게는 몰락의 길만 남아 있으므로 아티스트로서 그의 모습은 굳이 보여주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스타 이즈 본>은 브래들리 쿠퍼라는 배우의 매력을 끌어올려 ‘잭슨’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연료처럼 소모하는 방식으로 후반의 감정을 이끈다. 이 점은 ‘잭슨’이 이미 오랫동안 중독을 겪어왔고 영화에서도 몇 차례 불안정하고 나약해진 내면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앨리’의 매니저 ‘레즈’의 독설 한 마디 때문에 ‘잭슨’이 자살을 택한 것처럼 비치도록 만들기도 한다. 반면 흔히 활용될 법한 ‘앨리’의 데뷔 전 과거에 대한 가십이나 그녀의 음악 활동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고 곧장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 올려놓음으로써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 팝 스타 ‘앨리’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다. 성공한 후의 ‘앨리’는 이미 가수로서 레이디 가가가 어떤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는지를 안다면 그냥 ‘레이디 가가가 스크린에서도 자신을 연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다.


‘레즈’에게 데뷔 제안을 받은 직후의 ‘앨리’와 ‘잭슨’의 대화 중 ‘질투’라는 화두가 등장한다. 그래미 상 노미네이트 직후 욕조에서의 말다툼 신이 있기는 하지만 단순한 부부싸움 정도에 그칠 뿐 이것이 이야기에 충분히 개입되지는 못한다. 새롭게 스타가 된 인물을 향한, 이미 스타였던 인물의 (시기심을 포함한) 복잡한 내면을 조금 더 그려냈다면 영화를 ‘앨리’와 ‘잭슨’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브래들리 쿠퍼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성공했지만, 이 ‘스타탄생’ 이야기가 수십 년 후에 다시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조금 다른 모습도 한 번쯤은 궁금하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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