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나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충성스러운 청자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형과 한 방을 썼다. 중간 정도 크기의 방에 두 개의 옷장과 두 개의 책상이 나란히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2층 침대의 2층을 차지했지만, 몸이 자라면서 자연히 침대는 버리게 되었고, 요와 이불을 깔고 누운 머리맡에는 작은 오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작지만 CD도, 테이프도 재생할 수 있었고 FM 라디오도 지원했다. 그때부터 잠을 잘 때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아야 잠을 더 잘 자는 버릇이 생겼다. 분명 전에도 몇 개의 프로그램을 청취했을 텐데, 기억나는 건 MBC 라디오에서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방송했던 <이수영의 감성시대>. 이수영의 감성시대.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유튜브를 떠돌다 이수영의 마지막 방송일, 그녀의 눈물 섞인 클로징 멘트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게 2003년 3월이었다. 이어 <감성시대>의 DJ는 최정원(UN)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때는 같은 시간을 <박경림의 심심타파>가 채웠다. 그 몇 년간의 자정 라디오는 차분하고 고요하기보다는 주로 활기 있는 수다와 밝은 분위기의 노래들이 함께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라디오는 자연스럽게 내 귀에서 멀어졌고, 새로 생긴 128MB 용량의 MP3 플레이어에도 라디오 기능은 있었지만 Avril Lavigne 같은 팝 가수들의 재생목록이 귀를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다시 심야 라디오와의 연이 시작된 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2008년 여름이었다. SBS 파워 FM을 들었는데, 내 근무 시간이던 오후 11시부터 오전 9시까지의 프로그램 오프닝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이적의 텐텐클럽'부터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까지. 라디오 오프닝으로 지금 근무 시간이 얼마쯤 되었구나 하는 걸 알아차렸다. 하나의 감각만을 열어두는 매체는 그렇게 나머지 감각을 보조하기도 했다. 이 끼적임을 남기는 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개봉을 기다리면서 문득 지난 흔적들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인데, 단문 50원, 장문 100원의 유료 문자로 사연이나 신청곡을 보내던 기억,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있을 DJ가 마치 가까운 거리의 곁에 있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던 기억, 치지직 거리는 잡음들을 지나 맞추게 된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의 감촉, 그런 것들을 아직 알고 있다. 어떤 시절에 대해 '돌아가고 싶은'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그때가 돌아갈 수 없는 때임을 알기 때문인 한편, 그 시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여전히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라디오 애청자는 아니었고 다만 라디오가 거기 있어서 들었을 뿐인데, 삶에는 분명 십 혹은 백의 자리 숫자와 소수점 첫째 자리 숫자 하나의 주파수가 번개 이전의 천둥처럼 내리 꽂힌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수많은 되돌릴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었겠으나, 그때의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링크)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반: (링크)
*영화 글 이메일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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