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an 07. 2016

졸업하던 날

벌써, 작년

#1.


아빠, 의 뒷모습을 본다. 언제나 무뚝뚝함 뒤에 술과 담배로, 그리고 고기 굽는 손길로 대신 말하는, 그러면서 담배는 절대 배우지 말라 하시는 분. 형과 나는 노래방에 가자며 부모님을 꼬드긴다. 노래방에서 그의 뒷모습을 본다. 그가 마이크, 때로는 캔맥주, 를 쥐고 있는 손. 손가락의 커다란 반지. 안경테. 언제나 셔츠를 말끔히 입은 모습. 부르는 노래. 목소리. 뒷모습 하나에 그간의 세월이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그간 짊어져 오셨을 무게가 보인다. 노래방에서 보는 그의 뒷모습은 흡사 유하의 <비열한 거리>(2006)에서 병두(조인성)가 노래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3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나의 엄마, 이자 자신의 아내, 를 만나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가는 두 자식의 뒷모습을 지켜보셨을 그의 뒷모습을, 내가 본다. 싸이의 '아버지'나 라디의 '엄마' 같은 곡이 오버랩된다.






#2.


졸업식은 사실 나의 날이라기보다 '아들 학교 한 번 구경해보고 싶다'고 하셨던 부모님의 날이다. 학교 정문 앞에서 샀지만 한 송이 한 송이 직접 엮으신 것처럼 마음이 느껴지는 꽃다발. 학교 크고 좋네, 라며 내가 전공수업을 들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시는 그. 그리고 내 학위복과 학사모를 입고 쓰고 사진을 찍으시는 그.


커피는 자판기 커피만 드시지만 평소와 달리 유독 돈을 많이 쓰신다. 비싼 택시. 비싼 사진. 비싼 점심. 타지생활하면서 머리 좀 커졌다고 어른처럼 구는 자식들에게 오늘만큼은 제대로 부모 노릇,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어쩐지 오늘 나는 다른 때보다 밥을 팍팍 넘기지 못한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얼른 가서 할 일 하라신다. 아쉬운 마음에 차 시간 될 때까지 같이 있겠다고 하다가, 못 이기는 척 두 분 데이트 하시라며 뒷모습을 보인다. 역을 나서면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물론 두 분은 두 어른애의 뒷모습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며 바라보고 계신다. 나도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오늘도 나는 내 뒷모습을 보인다. 유난히 길고 긴 뒷모습이다. 아마도, 아니 확실히, 내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제는 정말로 명절이 아니면 뒷모습조차 볼/보일,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겠지. 오늘처럼 나는 언제나 내 뒷모습만 보이겠지만 그 뒷모습이라도 좀 더 자주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 어쩐지 원고 마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놀림이 느리다. 기사는 제자리다. 어느덧 내 나이는 두 분이 나를 낳으셨을 때의 그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직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아빠'다. 내가 내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되고서야 그 호칭을 그에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어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