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Oct 12. 2019

진짜 행복이 있는 곳: 천국은 우리별에 있어

<블랙미러> 시즌 3 에피소드 4 '샌 주니페로' 리뷰

다섯 개의 시즌에 걸쳐 드라마 <블랙 미러>의 각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는 바로 매체(Media)에 있다.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 점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시즌 3, 1화 '추락'),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세상'(시즌 1, 3화 '당신의 모든 순간')처럼 소재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는 한편 등장인물의 내면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시즌 2의 1화 '돌아올게' 역시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느껴졌는데, 마찬가지로 지금 소개할 <블랙 미러> 시즌 3의 4화 '샌 주니페로'(San Junipero) 역시 후자에 해당된다.


본 에피소드의 배경은 (일단) 1987년이다. '샌 주니페로'라는, 구체적으로 위치를 특정하지 않은 지명. 소위 '범생' 스타일로 차려입은 '요키'(맥켄지 데이비스)는 저녁 무렵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다 '터커스'라는 이름의 클럽에 들어간다. 아니,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며 두리번거리다 간신히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시청자)는 아직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요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끄럽고 화려한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거나 일행과 가까이 어울리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보드게임을 하고 또 오락실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곳저곳을 향해 분주히 시선을 옮기며 공간의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요키'는 어느새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이 마신 술잔을 두고 간) 빈자리에 앉아 있다. 아마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함이었던 걸까. 이때 또 다른 여성 '켈리'(구구 음바타로)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추근대는 남성을 뿌리치기 위해 '요키'의 옆자리에 불쑥 앉아 '켈리'는 그 남성을 돌려보낸다. (여기서 '켈리'가 '요키'를 일컬어 "이 친구는 병 때문에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낯선 상황을 지켜보던 '요키'는 곧이어 "실은 5개월"이라고 덧붙이는데 이 장면은 중요한 복선의 하나다.)



'샌 주니페로'는 그렇다면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으로 만나 서로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되는 두 여성의 이야기인가. 또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무엇 때문에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로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굳이 키워드를 찾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의식, 하나는 가상현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아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처음 접하게 되는, '요키'와 '켈리'가 서로 만나는 이 공간은 진짜 현실인 곳이 아니다. 이 '샌 주니페로'라는 공간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의식을 '업로드'해놓은 공간이다. (<블랙 미러>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일종의 반전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만 이건 딱히 반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냥 본 에피소드의 기본 바탕일 뿐이다!)



'샌 주니페로'에서 사람들은 여행자로 머물거나, 아예 '거주'하기를 선택하는 듯 보인다. '샌 주니페로'는 '진짜 같은' 곳이지만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의식만이 존재하는 곳이므로, 일주일마다 일정한 시간만 머무를 수 있다. '켈리'와 '요키' 모두 각자의 현실세계 속 사정이 있지만 '1987년 샌 주니페로'에서는 터커스 클럽을 찾아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일 수 있다. 조금 전 말한 '거주'라는 건 현실세계에서의 사람들이 죽고 나면 자신의 의식을 이 '샌 주니페로'에 '영구적'으로 업로드해놓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건 다시 말해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올려져 있는 세계(마치 '클라우드 서버' 같은 것이라 해두자면)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마치 그들의 사후세계처럼 이곳이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영원한 의식' 공간은 행복을 보장하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창립한 제임스 할리데이는 "내가 오아시스를 창조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몰랐지. 나는 평생토록 두려워만 했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단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현실은 실제 삶이니까. 내 말 알겠느냐?"라고 주인공 웨이드 와츠에게 말했다.

(어니스트 클라인, 『레디 플레이어 원』, 에이콘출판, 전정순 옮김, 2015. 527쪽에서)



'샌 주니페로'에서 '요키'와 '켈리'가 주고받는 말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다가도 일종의 교착 상태에 접어드는 계기 역시 이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의 경계 때문이다. 아니, '샌 주니페로'라는 공간에서 누리는 두 사람의 행복 혹은 둘의 관계 자체가 과연 '진짜인가' 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니 본 에피소드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 하기에도,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완전히 딱 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마지막에 삽입된 벨린다 칼라일의 곡 'Heaven is a place on Earth'은 곡명은 물론 가사의 내용으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돌고 돌아 다시 <블랙 미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 기술의 발전과 매체의 변화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쪽으로만 움직이는가. 시즌 3의 네 번째 에피소드 '샌 주니페로'는 감수성 짙은 이야기의 얼개 속에서 훌륭한 질문을 남긴다.




진행/모집 중인 영화와 책 관련 모임 정보들:


*3개월간 4회의 영화모임,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링크)

*3개월간 3회의 영화모임, <비밀영화탐독>: (링크)


그리고, 곧 공지하게 될 브런치X신세계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좋아요,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에 대해 더 깊고 넓은 대화를 나누고픈 당신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