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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17. 2019

다행히도 우리의 오류는...

영화기록은 곧 나의 역사가 된다


"문득 두려워집니다. 지금도 우리의 흐린 눈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는 영화들의 웅성대는 그림자가. 여기 띄우는 글에도 어쩔 수 없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 우리의 어리석음과 편견이.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의 오류는 활자로 남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일생은 그것이 스크린에서 걸어 내려온 뒤에도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이 편지들을 다시 고쳐 쓰고 부치지 못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우리는 느릿느릿 영화의 정체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요."

(김혜리, 『영화야 미안해』에서)


영화 기록은 늘 미완의 문장만을 겨우 남겨두는 일입니다. 내가 본 그 영화의 바로 그 느낌이란 영화가 끝나는 즉시, 아니 영화가 흐르는 내내 휘발되거나 다른 것들로 덧입혀 무엇인가 쓰다 보면 '이 느낌이 그 느낌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러나 기록의 역사성이란 다른 누군가가 읽기 때문에만 생기는 게 아니라 그 기록을 쓴 바로 자신이 나날이 성숙함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매일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돌아보며 끼적여두다 보면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씀의 흔적들이, 씀의 행위들이, 고스란히 역사가 되어 있는 것이죠.


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또 그게 언제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어요"라고만 말하기엔 그 처음이 궁금해져서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는, 한 달 전에는, 지난 봄에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는, 어떤 영화를 보았고 보았었는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머리와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때 써 둔 기록이 기억하고 있어서입니다. 하루하루 의식과 생각을 만들어가고 재미와 감동, 영감을 안겨주는 그 모든 간접 체험들이 과연 무엇이었고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놓치지 않고 싶어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생각은 언제나 정답일 수 없습니다. 잘 다듬고 매만지지 못한 생각들, 착각했던 것들, 오해했던 것들도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미완의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겸허해지고 매 순간에 성심을 다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직업이나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정체성일 때 더 중요해진다고 믿습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자신을 소설가가 아니라 '소설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는 문장을 읽은 뒤부터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 문장 하나처럼 영화 한 편도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것, 기억에 남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DJ is writer."가 아니라 "DJ writes."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작가다'가 아니라 '그는 글을 쓴다'라는 말. 완성된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미완일지라도 과정으로서의 글을 영화에 관하여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 읽어주어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쓰는 자신을 위한 기록들을. 그 영화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떠올리며,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늘 생각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눈을 뜰 때의 그 첫 느낌을 가능한 생생하게 문자 언어로 옮겨보려 노력하면서. 이 글은 언제나 완성되지 못한 채일 것입니다. 다음날 또 다른 글을 이어서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쓰는 이야기는 계속 시작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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