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샐린저' 리뷰
<샐린저>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J.D. 샐린저(1919~2010)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정확히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전기 형식이 아니라, 그의 생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질문들에서부터 출발해 그 답에 근접해가는 여정을 다룬다. 예: 샐린저는 왜 은둔 생활을 택했는가? (9년 이상을 취재했다고 한다)
방식 자체가 아주 효과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단순 인터뷰와 자료 나열식의 구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샐린저> 곳곳에 보인다. 가령 그가 쓴 소설 속 어떤 서술이나 그의 삶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던 주변인과의 일화를 일부 재연한 장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작품으로만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의 내면을 상상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물론 내게는 주로 그의 소설을 읽은 영화인들의 증언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주드 아패토우, 존 쿠삭, 마틴 쉰을 비롯해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얼굴도 만날 수 있었다. J.D. 샐린저와 그의 작품들이 MGM의 거물 새뮤얼 골드윈을 비롯해 영화계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었다.
영화 말미에는 그의 사후 미출간 소설들의 출간 상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샐린저가 자신의 작품 전반의 관리를 일임한 재단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의 영화화를 막는 것이기도 하다. 작중 어떤 이의 입에서 나오는 "작품이 나오고 난 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자면, 작품을 떠나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삶 자체가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지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샐린저>는 그의 작품을 접해온 독자라면 놓치기 아까운 다큐멘터리로 다가올 것이다.
니콜라스 홀트 주연의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가 작년 국내 개봉했을 때도 일부러 안 보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극장에서 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완전히 잊은 건 아니지만) J.D. 샐린저라는 이름에 관한 우선순위가 한동안 멀어져 있던 중 만나게 된 다큐멘터리 영화 <샐린저>. 마침 올해가 J.D. 샐린저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니, 어쩌면 '아직도 『호밀밭의 파수꾼』 안 읽은 사람 있어?' 하고 말 거는 영화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게 접니다,,,)
*영화 원제 'Salinger', 12월 12일 국내 개봉, 128분,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사 판씨네마의 초대로 미리 관람하였습니다.
*<샐린저> 예고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