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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25. 2019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저는 아직도 신기합니다

연말이 되면 "와 연말이다!" 같은 느낌보다는 '올해도 무사히 보냈구나' 같은 기분이 앞선다. 작년 12월 24일과 올해 12월 24일 사이 달라진 게 있다면 물론 '출근과 퇴근'이 생겼다는 것일 텐데, 해가 갈수록 스스로에게는 감흥이 줄어드는 동시에 누군가의 축하에는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된다. 내가 축하받을 만한 사람인가, 같은 생각을 문득 하게 되기 때문에.


어릴 때 형이 써준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니는 어떻게 크리스마스 전날에 태어날 생각을 다 했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러게. 나도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태어나고 보니 생일이 그런 날이네. 그렇게 말했던가? 안 했던가. 크리스마스 이브 생일이라는 건 좋은 날이면서 연말과 성탄절 분위기에 묻히기 딱 좋은 날이기도 했다. 막연히 '뭔가 흔하지 않은 날'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다.


나는 1988년 12월 24일에 태어나기로 결심한 적이 없고 그건 모두에게 마찬가지인 사실이겠다. 그러니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일 것이고, 누구보다 김선덕 씨일 것이다. 늘 생각한다. 그리 대단하지 못한 나날을 보냈고 좋은 재주를 타고났다고도 생각지 않지만 여태껏 나를 살아내게 한 것은 주변의 모든 타인들이었다고. 어떻게 이 자리에 살아 있는가. 여러 당신들은 어떻게 여기, 곁에 있는 것일까. 아직도 다 읽지도 않은 김소연 시인 산문 제목인 '나를 뺀 세상의 전부'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는데, "내가 뭐라고" 같은 생각을 자주 하는 건 스스로를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업무를 겸해서 오늘 사무실 건물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10분이다. 그 시간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앉아 나는 브런치에 올릴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자료를 정리했다.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있기 때문인 건지 생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대해 매일 생각하고 체감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에 몰두하면서 퇴근 후 볼 영화나 그 영화에 대해 써 내려갈 생각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그건 늘 스스로 "영화에 관해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기 합당한 사람인지에 대해 반성하거나 성찰하기 때문이다. 늘 말하고 다니길 나는 '인적 네트워크가 넓은 사람'이 아니므로, 누군가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덮어놓고 감사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2월에는 극장에서 불과 세 편의 영화를 봤다.


인스타그램으로 한정하자면, 많은 영화 이야기를 공유하지도 못하는 와중에 이메일 연재 소식과 같은 소위 '영업 피드'만 게시하는 게 송구스럽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일과 영화에 대해 쓰는 일 모두 양적으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자문하게 하는 일인 것도 사실이어서다. ([1인분 영화] 2020년 1월호는 다가오는 12월 31일(화) 23시까지 구독자 모집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쓰는 미문을 찾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 본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케이크와 선물을 손에 쥐고 퇴근했다. 지금처럼 달력의 빨간 날과 까만 날을 의식했던 적이 또 있었나.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당장 이틀 전의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10초쯤 생각해야 하는 일상이 그럼에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역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자신을 열어두고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살아본 적 없는 하루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놓인다. 마치 아직 관람하지 못한 영화들의 목록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날들의 숫자 너머 안갯속을 들여다보듯이. 영화에 관한 깊은 생각보다 사소한 일상 끼적임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스스로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게 기억할 만한 무엇일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닦으며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음을 내보일 수 있는 순간들이.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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