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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04. 2019

여기 당도한 새로운 계절,
그리고 새로운 시절

얼마 전 새로 일을 시작했다

새 직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이 2주째다. 영화를 다루었던 지난 직장에서의 일과는 맞닿아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것보다 요즘 생각하는 건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할 수 있다는 게 꽤 소중한 일이구나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위워크의 라운지와 화장실 등에는 경쾌한 템포의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다국적의 사람들이 드나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주 미약하고 단순한 것이어도 그것들 하나하나가 결국 의미가 된다는 것을 그 음악들은 상기시켜준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많이 벌어야지. 자본주의에 충실한 취향 덕질러의 2019년 하반기.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도 영화를 볼 것이고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점이고, 그 외의 모든 건 불확실하다. 아직 오지 않은 2020년을 생각하면서 펼치지 않은 2020년 플래너의 표지를 괜히 만지작거린다. (2019.11.18.)


여의도 위워크에서

2주간의 단기 인턴으로 시작한 일. 정해진 2주가 끝나고 대표님이 나를 불렀다. 긴 대화가 있었지만 요약하면 이렇다고 할 수 있겠다. 동진씨, 앞으로 계속 일해보실 생각 있어요? 물론 공고에 정규직 전환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했지만 함께 일한 동기는 고민 끝에 2주만 일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두 아이를 키우고 20년이 넘게 외국계 회사에 다닌 대표님이 보기에 내 경력은 대학교 갓 졸업한 신입이랑 별로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래서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일을 계속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회사에서는 내 전 직장 퇴사 후의 활동들(대충 '프리랜서처럼 보이는 백수'라고 해두자)을 좋은 쪽으로 헤아려 주었다. (라고 생각한다.) 근무 환경에 적응하고 새 업무를 배워 나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동안 또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 주거래은행을 바꿀 시기가 온 것인가,,,


회사 급여가 지급되는 게 우리은행으로 정해져 있어 새 계좌를 만들었다. 비대면 계좌 개설도 가능한 요즘이지만 일부러 점심시간을 활용해 근처 지점에 내방했다. 이것저것 서류 작성을 하고 사인을 하고 통장과 체크카드를 받아왔다. 식사를 하고 온 옆자리 과장님, 차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차장님 왈, "나는 새 직장 들어갈 때마다 은행이 바뀌더라고요." 무슨 대단한 자산이 있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주거래' 은행이라고 10년도 넘게 쓴 신한은행에서 이제 우리은행으로 '갈아타'야 할까 싶은 이야기를 하며 다시 각자의 업무에 집중했다.


위워크에서는 매주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열린다.


근무지인 위워크에서는 평일 중 매일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준다. 위워크 앱에서 시간 맞춰 등록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기다렸던 '달콤한 노오란 뀰'을 받았다. 퇴근 후에는 영화 모임을 했다. 월, 수, 금 3일간 퇴근 후 이메일을 썼으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모임 진행을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 일을 앞으로 얼마나 하게 될까. 이것은 잠시의 외도일까 완전한 커리어 전환일까. 모르겠고, 알지 못하겠고, 막연하다. 한 가지 생각하는 건 다만,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이다. 지인에게 "N잡러가 되어야겠다"라고 40% 정도의 농담을 담아 말했고 다른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영화 모임 호스트 제안을 하나 받았다.


며칠 전 피드에는 '바쁜 척'에 관한 짧은 글을 남겼다. 그 '바쁜 척' 이야길 또 누군가에게 했더니 '척'도 할 만한 게 있어야 하는 거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대략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건가. 그럴까. 금요일 저녁 영화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축 늘어진 채로 한 주를 돌아보았다. '잘'이라는 것. '오래'라는 것. '꾸준히'라는 것. 여러 가지 접두어들을 떠올렸다. 내가 잘하고 있나? 이걸 계속할 수 있는 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3주가 지났고, '첫 급여 우리 통장'이라고 찍힌 계좌에는 3주만큼의 급여가 들어왔다. 지난 3주간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뻔했다. "나, 좀 수고했지?"라고 자문했다.


관객의 취향에서 진행하는 영화 글쓰기 클래스 '써서 보는 영화' 11월반 2회차 모임


정시보다 1시간 정도 늦게 퇴근한 어느 날 혼잡한 지하철 9호선 급행과 2호선 환승을 뚫고 영화 글쓰기 모임을 진행한 뒤 집에 돌아와 이메일 원고를 썼던 수요일 밤. 정시보다 1시간 30분 정도 늦게 퇴근한 뒤 9호선 급행과 7호선 환승을 뚫고 진행한 영화 모임 후 피곤한 몸으로 잠들지 못하고 생각들에 묻혀 있는 밤. 급여명세서를 보낸 대표님의 이메일에 "앞으로 자사에 전문성을 겸비한 기둥으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고생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에게는 이제 하나의 시절이 끝났고, 새로운 시절이 시작되는 중이다. (2019.11.29.)



게절이 바뀌는 무렵에야 더 소중한 존재들이 곳곳에 있다. 고되거나 힘든 것들을 버티게 하는 좋아하는 문장 몇 개. 읽고 쓸 시간이 없는 날에도 가방에 들어 있는 책 한 권과 펜과 노트. 며칠 뒤로 예매해놓는 영화나, 드문드문 그러나 멀지 않게 기약해두는 만남의 약속. 각자의 바쁨 속에서도 서로를 문득 챙기는 다정한 안부 인사. 대화 자체가 주제인 대화. 누군가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음을 알게 하는 진심 어린 이야기들. 사람 사이의 알맞은 거리와 혼자의 시간. (2019.12.03.)



*신세계아카데미 겨울학기 영화 글쓰기 강의: (링크)

*원데이 영화 글쓰기 수업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모집: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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