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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28. 2020

한 사람의 무지함과 안일함이
일으킬 수 있는 일

물론 모든 원인이 거기 있진 않겠지만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방송 중에서

(31번 확진자는 위와 같이 말했다. 과연 그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침체일로에 있던 극장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한 건 <정직한 후보>나 <작은 아씨들>이 개봉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국내에서는 조금은 소강 상태에 있던 것처럼 보이던 코로나19가 모 단체에 의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극장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이 생긴 이래 역대 최저 수준의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주말 좌석판매율은 10%에도 못 미치며 (평소 적어도 15% 안팎의 수치를 보인다) 평일은 2%~3%를 찍는다. (보통 10% 안팎의 수치를 보인다.) 수많은 자영업인들이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는 택배와 배달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


31번 확진자의 저 "어쨌든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잖아요"라는 말은 대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인가. 당장 주가가 폭락하고 수많은 업종이 직접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건 생각해보았을는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야기한 변화는 생각해보았을는지. 나는 저것을 기꺼이 '비정상'이라 부를 것이다. 동료 시민이자 사회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이의 삶은 존중할 필요가 없다.


신천지를 오래도록 취재해 온 변상욱 앵커에 따르면 신천지 교인 중에서도 대다수는 자신이 신천지라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그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 차례 검진을 거부하는 일. 아마 자신이 확진자가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었거나, 혹은 포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자가격리 같은 것이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했겠지.


나는 성인(Saint)이 될 생각 같은 건 없고 단지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고 옳다고 믿는 것을 따르려 할 뿐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늘 사무실과 불과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확진자가 나왔고, 주말마다 들르는 모임 장소가 속해 있는 행정구역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해도 불확실하고 불특정 한 일의 위협이 가져다주는 막연한 두려움은 모두의 일상에 지장을 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선량하고 건강한 사람의 기침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라든가, 코와 입이 가려진 얼굴의 눈빛에서 전해져 오는, 그 긴장과 초조함 같은 것들.


한 번 더 적어야겠다. 모든 가치관을 그 자체로 다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존중이란 건 그에 맞는 의식을 갖춘 이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의 '31번'이라는 숫자 너머의 삶 같은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당장 경제 전반에 미치는 막대한 피해보다도 나는 저 한 사람의 무지함과 안일함이 얼마나 수많은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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