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Feb 11. 2020

'성덕'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시네마의 매 순간

'기생충'(2019)의 아카데미 수상에 부쳐

이른바 '성덕'을 말할 때 항상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원작자 어니스트 클라인을 언급하고는 했다. 어제는 거기 한 명의 이름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고 영화를 공부할 때부터 우러러보았던 감독과 함께 영화계 최대의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 그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며 추켜세워주는 일. 그 감독의 밝은 미소와 박수를 마주하는 일.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이름과 함께 봉준호의 이름을 동시대에 적어볼 수 있어 기쁘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국가를 대표해 만드는 게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의무도 물론 없다. 나는 단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확고하게 만드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가 동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매 순간의 언행과 발자취가 좋을 뿐이다.


그러니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는 일이라든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일, 그리고 비영어권 영화 중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 일 같은 건 어제의 일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것일 따름이다.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속속들이 생각하고 채워갈 줄 아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너무 당연한 말인 것이다. 좋은 영화는 영화 밖에서도 영화다. 좋은 영화인 역시 현장 밖에서도 영화인이다. 좋은 이야기도 그 이야기 바깥에서도 생명력을 이어간다.

뒤늦게 시상식 중계를 보며 키아누 리브스가, 페넬로페 크루즈가, 스파이크 리가, 제인 폰다가 영화 혹은 감독을 호명하던 매 순간의 떨림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했다. 감독상 수상 소감 중 언급한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한 번 더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 그 말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의 출발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기생충>은 언어와 자막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바를, 시네마 그 자체가 언어라는 점을 입증한다. 더불어 이미경 부회장의 짧은 수상소감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그래서 끄덕거리게 된다.

어제는 <기생충>을 극장에서 함께 봤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가 작년 5월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말했다. '뭔가 대단하고 엄청난 것을 보았다'는 그때의 어렴풋한 느낌은 오늘에 와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 되었다. (다만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만큼은 여전하게도 소수의 톱 S급 감독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국의 주류 상업영화들이 어떤 작품들이 나오는지 그 면면을 생각해보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던진 시네마에 대한 물음에 봉준호 감독이 한 가지 예시답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본다면. (2020.02.11.)



(살짝 여담: '작품상'은 원래부터 제작자가 받는 상다. 이미경 부회장이 무대에 오른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문제 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다. 수상소감의 내용도 적절했음은 물론이고.)


(시상식에는 기억할 만한 순간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와킨 피닉스와 브래드 피트의 수상 소감, 그리고 에미넴, 엘튼 존, 로라 던, 르네 젤웨거, 그리고 "Up up up..."을 외치던 배우들까지.)




*매월 한 명의 영화인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모임 '월간영화인': (링크)

*원데이 영화 글쓰기 수업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모집: (링크)

*4주 영화 글쓰기 수업 '써서 보는 영화'(2/23~3/15) 모집: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라이킷이나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월 한 명의 영화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