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2020)
넷플릭스에서 '새로 등록된 콘텐츠' 따위의 목록을 보다가 우연히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2020)라는 제목, 원제는 <Is Love Blind?>다. 데이팅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명의 남녀가 제한된 기간 동안 따로 합숙하며, 그들은 상대를 볼 수 없는 방에 들어가 맞은편에 앉은 이성과 대화를 나눈다.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간단하다. '결혼할 사람'을 찾는 것. 중간중간 날짜를 알리는 자막에는 '결혼식까지 며칠 전'이라는 문구가 뒤따른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사람이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서로 외모를 볼 수 없다. 오직 목소리,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상대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하트 시그널]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출연자들의 경력이나 출연자 중 누군가 하는 레스토랑이 핫하다고 할 때도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예능, 리얼리티 쪽에 별 관심이 없기도 했었고 말하자면 그런 걸 무얼 하러 보냐는 것이었는데, (그러면서 [짝]은 방영 당시 한동안 챙겨봤었다) 이 프로그램은 좀 지켜보는 감회가 다르다.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는 공개는 이미 2월에 되었지만 촬영 시기는 이미 1년도 더 지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이미 유튜브 등지에선 <Is Love Blind?>(원제가 더 마음에 든다) 출연자들의 근황 같은 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싱글이고 하는 것들.
프로그램의 원제가 묻는 건 이런 것이다. '보지 않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누군가는 이 질문을 읽자마자 코웃음 칠 것이고, 누군가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군'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출연자들의 반응과 각자의 행동들, 그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
여러 쌍 혹은 여러 남녀들이 각자 맺어가는 관계들을 비교적 교차해서 편집하고 있지만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는 팝 위주의 감각적인 선곡 하에 꽤 전개가 빠르다. 어느 정도냐면, 첫 화에서 이미 어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기로 합의한다. 이 기획이 단지 커플 매칭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물론 뒤에 가면 서로의 가족을 만난다든지 하는 일들과 '결혼식'을 하기 전까지 일어나는 여러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프로그램 제작진이나 작가진이 어떤 대답을 상정하고 극을 꾸려간다는 신호가 되지는 않는다. 변수가 있다. 두 사람의 일을 가로막는 여러 현실적 요인들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상대의 외모'도' 기대했는데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다든지. 목소리만으로 대화할 때는 상대에게 이끌렸지만 대면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미처 염두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띈다든지.
아직 2화까지만 보고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해 어떤 논평이나 리뷰 따위를 하기는 섣부르다. 그러나 앞서 [하트 시그널]은 안 봤다고 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나는 상대를 대면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상대에게 특정한 종류의 호감이나 이끌림을 느끼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라서 말이다. 여러 직, 간접적인 형태의 그것을 경험한 적 있기도 하고.
실제로 출연진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러브'는 정말 '블라인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상대와 불과 며칠간 (그것도 제한된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 어떤 사람은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안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눈물을 글썽이고, 동료(동성)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동문이 열리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어떤 이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또 어떤 이들은 기쁨의 입맞춤을 한다. 이런 장르의 프로그램에 관해 말할 때 어디까지가 연출/각본이고 어디까지가 '리얼'인지 같은 것을 말하는 건 별로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면 어떨까. 다큐멘터리 역시 당연하게도 연출자 혹은 촬영자의 시선 혹은 의도가 은연중 반영된다.) 그러니까 어떤 두 사람이 데이팅 앱 같은 곳에서 서로 채팅을 하다 마침내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것과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는 일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12명의 남녀 중 과연 몇 쌍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에 '성공'할지 같은 것보다 나는 그래서 저 출연자들이 매 순간 상대와 나누는 대화와 그 관계의 과정 자체가 더 궁금하다. 물론 다음 시즌의 제작 여부는 확정된 바 없고, 내게는 이 프로그램을 조금 더 느긋하게 지켜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벌써부터 특정 인물은 말하자면 '악플'을 받을 것 같고 누구는 반면 동정표를 얻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이미 2화만으로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한다. 과연 이 '실험'의 과정은 어떻게 전개될까. 같은 과정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들 저마다가 지닌 사랑의 경험의 차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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