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많이 하지만 깊게 하지는 않는다

by 고요


어제 바깥 볼 일이 있어 사무실을 나와 그 땡볕에 걸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내가 낙천적인 이유가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

오래전에 동네 친구 점숙이는 부산에, 나는 서울에 터전을 잡았는데 그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간 적이 있었다.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친구이기도 했고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늘 불완전한 친구였다.

그날 대뜸

- 나도 너 따라 서울 가서 살까?

- 나는 오빠들이라도 있지만 너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괜찮겠어?

그 후 친구는 정말 서울로 올라왔고 나와 오빠가 자취하는 두 칸짜리 집에 거처를

구할 때까지 잠시 거주했다. 어린 친구는 어린 나를 믿고...

나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직장도 알아봐 줬고 친구는 몇 달 잘 다녔다.

어느 날부턴가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과 열정적으로 연애를 하더니 이내 결혼을 했다.

나는 이 친구처럼 열정적으로 연애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사설이 길었냐 하면 그 당시 친구가 한 말 때문이다.

- 너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종이라도 뚫겠다.

그랬는지 아님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단점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며칠 전에 사진을 보다가 새로운 걸 발견하고선 그에게 흥분해서 말했다.

- 세상에, 내 눈썹이 이랬어요? 이 정도였어?

옛날에 미용실에서 가끔 눈썹을 정리해 준 거 말고는 한 적이 없다.

평소 화장을 안 하다 보니 자세히 볼 기회도 없었고 무엇보다 관심이 없었다.

눈썹이 많은 건 알았고 그래서 여름엔 텁텁해 보이긴 했지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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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해 줄게

- 할 수 있겠어요?

- 머리도 잘라 줄게. 내가 더 잘 자를 수 있어.

맨날 기장만 자르는지라 미용실에 안 간 지 2~3년 됐다.

대충 배워서 대충 잘라 보통은 묶고 다닌다.

지난주 눈썹도 정리해 줬고 머리도 잘라 줬다.

훨씬 깨끗해졌다.

어린 왕자와 장미꽃처럼 우리도 이렇게 길들여지나 보다.

희한하다. 눈물이 핑 돈다.

그날도 그랬고 한 번씩 생각나면 어김없이.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것도, 시골집을 사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그를 설득해 근래에 시골집 임대를 몇 군데 보고 왔다.

아직은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지만 운이 좋으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 열 번을 봐도 열 번 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내 마음에 꼭 맞는 집 찾기가 힘들어

- 몰라.

그는 앙탈이라도 부려보지만 나는 여우보다 더한 곰이다.ㅎ

이해는 한다.

그는 고향은 시골이지만 자란 곳이 서울이다 보니 엄두가 안 날 것이다.

- 밭일은 내가 할 테니까 자기는 물고기나 잡아 와요.

오이를 심으면 과연 오이가 열릴까 호박을 심으면 과연 호박이 열릴까 궁금했었는데

열리는 건 확인했다. 당연한 일이 내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크게 욕심도 없는 사람이라 시골에서 적당히 일 하고 적당히 놀면서 살고 싶다.

가끔 아이들이 내려오면 밭에서 막 따 온 싱싱한 채소로 국과 반찬을 만들어 주고

각종 유실수를 심어 맘껏 따 먹게 하고 싶고 한 번씩 쉬어 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이런 날이 온 거 보면 그런 날도 올 것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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