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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Apr 30. 2022

감사의 4월

2022년 4월의 독서기록

2022년 4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예상보다 힘들고 잔인한 4월이었습니다. 가족과 책이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달이기도 합니다.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작은 조약돌에도 파장을 일으키는 그저 작은 존재였습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에 안도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아픔이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다짐했던 계획도 쉽게 포기하고 마는 나약한 존재인 나에 대한 실망감이 동시에 덮쳐왔습니다. 어머니의 중환자실 앞에서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싱싱한 날씨는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하는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희망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어머니가 일반병실로 옮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자리에 누웠을 때 알 수 없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마음의 준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덜컥했던 마음이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를 앱을 실행했더니 예전에 발행했던 브런치 북이 메인 페이지에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렇게 올해 4월은 저에게 ‘감사한 4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은 책과 브런치에 업로드한 글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달은 독서와 글쓰기에 푹 빠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려울 때 위로와 격려의 글을 남겨주셨던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희망찬 다짐도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5월이 되길 기원합니다.


독서 기록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민음사, 2002)


#눈 #허무 #열정


터널 건너에 있는 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허무와 대비되는 두 여인의 열정


사람에게 있는 첫인상처럼 소설에는 첫 문장이 있다. 『설국』처럼 첫 문장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소설도 드물다. 이 문장으로 독자들은 꿈에서 볼듯한 장면을 상상하며 이야기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주인공에 빙의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 기차의 규칙적인 덜컹거림이 지겨워질 때쯤, 격변을 예고하듯 을씨년스러운 터널 안으로 기차와 나의 의식을 빨려 들어갔다. 또다시 불편한 소음이 귀에 익으려 하자, 농이라고 던지듯 터널의 출구가 또 다른 세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벌컥” 소리와 함께 터널의 출구를 지나자 하늘과 땅의 구분이 모호한 세상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드넓은 수평선이 숨어있던 바다가 파란색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면 새하얀 눈은 반가움도 미움도 아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의 고장은 그렇게 별 표정이 없다는 게 첫인상이다.


금수저 출신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설국'에 왔다. 그곳에서 만난 두 여인 고미코와 요코는 그와 다르게 연민과 사랑으로 열정이 넘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서사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표정, 동작, 말투를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과 계절의 변화 과정을 서글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내는 몽환적 문체가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구체화한 과정도 저자의 단편적인 연작을 모아 구성했기 때문에 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기는 쉽지도 않고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가와바타(저자)만의 문체를 감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어크로스, 2021)


#철학 #기차 #삶의지혜


삶은 우리가 가장 열중했던 순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은 열정적으로 살았던 순간, 가장 고민했던 순간,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


저자는 책에서 철학을 기차 여행처럼 끊김 없이 연결하며 설명한다. 『명상록』의 저자 마르크스의 침대 철학은 카뮈의 실존 철학과 연결된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자살이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이 침대에서 일어나느냐이다. 마르크스는 사명과 의무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 『명상록』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즉, 철인 황제에게도 아침은 희망과 절말이 공존하는 대상이었다. 의무보다는 사명이기에 로마 제국은 존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올 사랑』·정혜윤(위고, 2020)


#감상문 #서평 #지혜


라디오 방송 PD의 코로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가 담긴 10가지 이야기(책)


처음에는 단편 소설 모음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 서평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구 상의 모든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의 시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가?’라는 쉬워 보이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라디오 방송 PD인 정혜윤 작가는 자신의 전문성과 탁월한 독서를 통해 알게 된 삵의 지혜, 특히 막막한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책에 담아냈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저자의 풍부한 독서 이력은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 ‘지혜'가 되었다. 솔직하고 매력적으로 소개된 책들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달의 책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민음사, 2002)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달의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 [7 p]

이 문장으로 독자들은 이야기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독자로 하여금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과 더불어 어둑하고 긴 터널을 지나 막 눈부신 은세계로 나온 듯한 환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빛과 색채 또는 소리에 기이할 정도로 예민한 가와바타의 감각은 때로 현실을 몽환적인 순간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일시적 유행에 휩쓸리는 법 없이 간결한 문체와 빈틈없는 관찰력으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그의 문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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