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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n 30. 2022

6월은 축제였다

2022년 6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우중충한 장마만큼이나 기분도 축축 처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적추적한 기분을 쨍쨍한 기분으로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날이 월요일 아침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싫습니다. 하지만 비가 저에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비를 핑계로 만나기 싫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미룰 수 있다는 사실은 고맙습니다. 비를 핑계로 해물파전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비는 음악과도 어울리고 독서나 글쓰기와도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까만 밤 부슬거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글이 쓰고 싶습니다. 잊고 있던 추억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가슴 뭉클하게 읽었던 책이, 가슴 시린 이별의 기억이 글로 잘 써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대부분 다음날 다시는 이런 글을 쓰지 말자고 후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마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제의 6월, 긴 장마의 시작이 있던 이번 달은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축제에서 부르던 우리들의 노래는 누군가를 향한 편지 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농담보다 노래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꽃그늘 아래 계절이 바뀌는 것이
서럽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요

함께 노래했던 봄
푸르게 절망한 여름
고요했던 가을과
찬란한 고립의 겨울

그리고 다시 이 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편지할 때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은 우리만 아는 것
기어 통과한 세월의 이름은
우리만 아는 것입니다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독서 기록


『길 위의 독서』·전성원(뜨란, 2018)


#서평집 #지식인 #독서와글쓰기의삶


온몸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온 인간의 뜨거운 존재 증명. 전성원이라는 작가의 발견. 서평을 쓰는 것이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준 수작.


저자의 서평 모음집이자만 이 책을 단순히 그동안 저자의 글쓰기 발자취를 축적한 결과물로 취급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삶 자체를 담고 있는 서평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서평과 인생 이야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전성원 작가는 당연하고 쉽게 설명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이 만만한 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와 생소한 제목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넓은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지성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사회를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으로 책 전체의 분위기는 무겁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의 향연은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다. 절절한 인생 경험에서 나오는 저자의 통찰력이 느껴지는 문장은 그래서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어크로스, 2021)


#재독 #철학 #기차 #여행


뉴욕타임스 기자와 NPR(National Public Radio) 해외특파원으로 활약한 철학적 여행가 에릭 와이너. 그는 기차를 타며 철학과 철학자를 사유하는 것을 사랑한다. 어찌 보면 디지털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기차는 21세기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의 추억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덜컹거리는 기차와 따분한 철학 이야기는 잘 어울린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독자들에게 난해하고 복잡하지만 꼭 필요한 철학적 사유를 기차여행을 통해 흥미롭게 펼쳐낸다. 고심 끝에 선별된 14명의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기차여행처럼 천천히 하지만 깊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삶과 작품에서 우리가 어떤 도움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지 기차여행처럼 편안하게 안내해 주는 책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 적힌 소제목과 적절한 인용구는 우리를 진지한 철학과 인문학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안내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르던 곳의 산책을 마치고 길 초입에 스치들 읽었던 길안내 문을 다시 읽을 때의 감회가 특별한 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를 읽고 소제목과 제목과 인용문을 다시 읽으면 이번 글에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철학자의 생각을 체화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고전의 고전』·강대진 외 4명(아카넷, 2021)


#고전 #고대그리스 #문학 #역사 #철학


책의 제목대로 고전들의 고전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문학, 역사, 철학 분야의 핵심적인 작품들의 의미와 가치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인류에게 인문학은 서사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던 이야기는 기원전 9세기에 호메로스에 의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이후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천재적인 작가들에 의해 그리스 비극이 나타난다. 이러한 비극은 당시 그리스 문명이 얼마나 진보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문학작품에 이어서 등장 최초의 산문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였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인류에게 ‘역사'의 가치를 최초로 인식하게 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며 그리스 문명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된다. 이러한 흐름과 발맞추어 위대한 철학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중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고전의 주인공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사는 현재를 사는 인류 문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류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렵게 느껴졌던 기원전 ‘진짜’ 고전들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우선 이 책을 통해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읽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목정원(아침달, 2021)


#공연예술학 #연극 #관객


공연예술학 박사의 프랑스 유학기. 6 동안 공연예술을 수학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목정원 작가, 학생이라는 정체성에  ‘이방인'이기에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공통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아니었을까라는 마지막 편지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에세이에 가까운 유학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세이 어원에 이미 ‘시도한다'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이자 학생으로서 꾸준한 시도와 실험으로 논문이라는 표면적인 결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과 연극의 오묘한 관계를 독자들에게 편하게 설명해줄 수 사람이 되었다. 또한 철학적이지만 문학적인 저자의 문체는 따라 하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한 편의 시집을 읽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좋은 문장이 넘쳐난다. 생소한 공연예술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달의 책


『길 위의 독서』·전성원(뜨란, 2018)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달의 문장


지옥은 ‘진실이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길 위의 독서』, [329 p]

지옥이란 물리적 고통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진실’을 기꺼이 배반할 수 있는 공간, 배반이 합리적 선택으로 인정받는 사회, 정의가 비웃음이 되는 문화가 곧 지옥이다. 이러한 지옥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망각 때문이다.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달콤한 유혹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냥 과거를 반복하자는 말일 수도 있다. 희망찬 내일을 위해 잊혔던 과거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이면 지옥이 된다. 불편하다고 숨기고, 임시방편 거적때기로 덮어보지만 추악한 악취는 피할 길이 없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한 지옥은 결국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친다. 망각은 비극의 반복을 초래할 뿐이다. 기억하는 이유는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망각과 기억 중, 망각을 선택하는 자들의 의도는 한결같다.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시시한 과거는 잊어야 한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밝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기억이지 망각이 아니다. 망각은 밝은 미래가 아니라 침울한 후회와 비극을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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