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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l 31. 2022

여름, 책, 도서관

2022년 7월의 독서기록

2022년 7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현실을 직접 목격하기 전에는 ‘자기 객관화’란 상상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루한 현실도 관념의 세계에서는 숭고한 인내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지식인의 소양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기 객관화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야 할 책과 할 일은 쌓여가지만, 무더위를 핑계로 자꾸만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열대야를 견디며 무엇인가 한다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의지와 더위 사이에서 치열하게 번민하는 7월이었습니다.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부족한 부분보다는 성과를 거둔 부분에 집중하며 또다시 다음 달을 기약합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시원한 도서관이나 서점만 한 곳도 없습니다. 혼자서도 좋지만, 연인과 함께 그리고 가족과 함께 책을 구경하러 가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시원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생각을 읽으며 지적 허영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향기로운 책 내음은 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도서관을 많이 드나들었던 7월이었습니다. 아마 8월도 역시 무더운 한 달이 될 것 같지만 책, 도서관, 서점이 있기에 희망적입니다.


독서 기록


#7월독서 #독서기록 #독서달력 #리더스


『엔드 오브 타임』·브라이언 그린(와이즈베리, 2021)


#시간 #우주 #엔트로피 #진화론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브라이언 그린은 존재의 시작과 끝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의미를 과학적 지성으로 철저하게 설명한다. 그 논거 주인공은 엔트로피와 진화론이다. 모든 존재의 태초와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물리학 법칙이 존재한다. 영원은 인간에게도 우주에도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주의 법칙, 다시 말해 물리학 법칙을 설명하는 수학적 방정식은 영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시작과 끝을 엔트로피와 진화론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어느 정도 해냈다고 생각한다. 『엔드 오브 타임』은 그런 책이다. 존재의 의미를 물리학으로 설명한 책.


존재에 관한 고찰이 그저 과학적 접근만으로 완벽할 수 없음을 저자도 잘 알고 있었다. 전문 분야인 수학을 최대한 절제하고 적절하게 배치된 인문학적 요소는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따라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은 지적이고 우아하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과학적 개념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엔트로피와 진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와 관련된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무질서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설명은 ‘거시적인 상태에 대한 미시적인 경우의 수'가 바로 엔트로피의 정의이다. 우주는 대부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 즉 복잡하고 무질서한 세계로 점점 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물질에서 마음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개념이 바로 진화론이다. 최초의 생명은 과연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질문에 지금까지 과학은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몇 가지 존재하며 그 설명의 가장 큰 줄기가 바로 진화론이다. 저자와 함께 존재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함께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책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것을 넘어 숭고하다. 별의 탄생과 생명체의 탄생 그리고 인류의 기원은 하나로 이어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민음사, 2018)


#존재 #사랑 #정치 #사회와개인 #운명


이념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이라는 존재는 이념(이데올로기)의 존재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정말 무거운가 가벼운가? 사랑은 인간의 삶보다 무거운 존재일까? 현재를 사는 나는 과연 나의 삶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괴로운가 아니면 너무 가볍기 때문에 힘들어하는가? 이 책을 읽은 내내 저자인 밀란 쿤데라의 끝없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꾸 나에게 무엇인가 물어본다. 특히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집착에 가깝게 물고 늘어진다.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의 진심은 무엇인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어본다.


이 소설은 제목과 내용 모두에서 ‘모순’을 이야기한다. 참을 수 없는 무게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 머리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토마시는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유주의자이다. 연인과의 관계에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한다. 운명처럼 다가온 연인 테레사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토마시의 자유로운 영혼은 본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지한 사랑과 격정적인 섹스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한지 토마시 자신도 알지 못한다. 우리도 둘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무거움과 가벼움 중에 무엇이 긍정적인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모순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저자인 밀란 쿤테라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에서 인간의 실존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인생은 모순 그 자체라고 말한다. 사랑과 섹스, 농담과 진지함, 자유와 의무,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항상 이분법 사이를 헤맨다. 둘 사이를 저울질하며 무엇이 더 우월한지 평가하고 결정하려 한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모순’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작품을 읽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가벼움과 무거움 중 무엇이 더 긍정적인 것인지와 같은) 고민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다윈의 식탁』·장대익(바다출판사, 2016)


#진화론 #다원 #굴드 #도킨스


과학은 논쟁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대익 교수는 “과학은 논쟁이다.”라고 강조한다.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윈의 후예들이 펼치는 치열한 논쟁 속에서 우리는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과학은 논쟁의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단순한 게임과는 다르다. 과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항상 진실만을 말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떠한 과학적 명제도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태도에 과학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의 추구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다원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이를 추종하거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수많은 지식인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진화론을 불온서적으로 여기며 극렬하게 비판한 지식인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고단한 여정을 거치고 나서 현재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보편타당한 진실이 되었다. 진화론을 반대하는 의견들은 그의 이론을 견고하게 다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논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대익 교수는 이러한 긍정적인 논쟁의 효과가 진화론 내에서도 치열하게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설명한다. 다원의 후예들에게 진화론은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불명의 진리가 아니었다. 논리의 허점과 가설과 일치하지 않는 사례를 찾는 것도 진화론자들의 역할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로 대표되는 적응주의와 반적응주의 대립은 결국 진화론을 진화시켰다.


일반인들이 진화론과 관련된 논쟁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꿈이지만 식탁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다윈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가능한 일도 아닐뿐더러 이 책의 저술 목적은 진화론의 전부를 이해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진화론의 서론과 전체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원의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개론서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과학적 논쟁을 통해 진화론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면 이 책에서 소개된 진화론의 주요 저서들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윈의 식탁』에는 진화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저서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다윈의 정원』·장대익(바다출판사, 2017)


#유전자 #인간 #밈


과학은 실용의 도구를 넘어 인식의 원천으로 진화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유전자, 인간, 밈(인공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한울, 2011)


#생명 #물리 #탐구


1933년 파동역학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한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 그는 특별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간단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물리학자의 대답이 『생명이란 무엇인가』이란 책이다. 이 책이 인류사에서 아직도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1) 생명을 포함하여 세계를 총괄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치열한 탐구 정신, 그리고 2) 그러한 정신의 바탕이라고 여겨지는 학자와 인간으로서의 겸허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명에 관해 우리보다 훨씬 정교하게 설명할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과학자가 일반인보다 학문적인 시각에서 생명을 논할 수 있겠지만,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생명의 정의는 달라진다.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 대가였던 슈뢰딩거도 생명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생명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는 양자역학의 질서를 엄격히 지키는 존재였다.


양자역학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벗어난 미시세계의 법칙이다.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힘든 물리법칙이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물질의 불연속성이다. 물리법칙을 설명하려면 결국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에 관한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다. 그 원자들이 변화하는 질서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물질의 불연속성이란 원자 단위에서 보이는 존재들은 불연속적 변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유전자가 영속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유전자도 결국 원자 단위로 구분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은 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을 ‘질서와 무질서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변화와 보존의 절묘한 조화가 결국 생명의 실체라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1, 2』·레프 톨스토이(민음사, 2009)


#19세기 #러시아 #안나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교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리얼리즘의 진수이자 러시아 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만 보면 안나의 이야기가 전부일 것 같지만 그녀의 운명만큼이나 모순과 불행으로 물든 또 하나의 인물이 바로 레빈이다. 두 인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양전하와 음전하처럼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시대를 사는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안나와 레빈은 그래서 다르지만 같다. 1870년대 러시아를 사는 귀족계층이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은 다르다.


2권은 이 책의 이야기의 두 축인 레빈(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과 키티(카체리나 알렉산드로브나)의 관계 그리고 안나(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의 관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레빈과 키티는 결별과 후회에서 만남과 결실로 바뀌고 안나와 브론스키는 유혹과 관능에서 후회와 갈등으로 바뀐다. 레빈의 철학과 생활방식 그리고 가치관은 저자인 톨스토이의 아바타 같다고 느껴진다. 러시아의 참혹한 상황에 대한 레빈의 문제의식,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과 노력은 톨스토이의 고뇌를 잘 드러낸다. 이에 반해 안나의 물리적 일탈과 정신적 갈등은 톨스토이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하게 되었다. 레빈과 안나의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인생은 우리에게 삶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3권은 다음 달에)



이달의 책


『엔드 오브 타임』·브라이언 그린(와이즈베리, 202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달의 문장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92 p]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난 것은 바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무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 자신을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의 숭고함을 지키려 맹인의 길, 속죄의 길을 선택했다. 그때는 몰랐다는 말 뒤에는 자신과 현실의 문제 사이에 커다란 벽을 쌓고 싶은 유치한 의지가 숨어있다. 무지의 대한 속죄는 스스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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