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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n 18. 2022

지옥의 정의


도서관을 찾게 되면 항상 지나치지 못하는 섹터가 있다. 바로 서평과 독서에 관한 책이 모여있는 곳이다. 십진분류법으로 029(독서  정보매체의 이용) 부근의 책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서평을  쓰고 싶은 필자에게 서평 전문가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책과 관련된 글은 따라 하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참고 자료이자, 언젠가  이루고 싶은 로망이기도 하다. 얼마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도 습관처럼  부근을 서성이다가 전성원 작가의 『길 위의 독서』(뜨란, 2018) 책을 발견했다.


우선 작가 소개가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5·18 민주항쟁에서 세월호 참사가 있기까지 그가 겪은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특히 거친 건설 현장의 노동자에서 대학, 광고회사, 『황해문화』 편집장 등을 거치며 작가가 되는 그의 인생은 필자에게 '존경과 부러움'을 넘어 '공감과 반성'이었다.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서평 쓰기의 전범이 될 글을 만난 셈이다. 전성원이라는 작가의 발견. 서평을 쓰는 것이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 명징하게 보여준 수작이다.


한편 이 책에서 그의 서평은 다분히 자전적이기 때문에 ‘바람구두 인생 서평’이라는 부제가 달렸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리뷰에서도 "전성원 작가의 서평은 쉽게 쓰인 글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이며, 한 권의 책이 온몸을 관통하며 내면에서 변환하는 과정을 담은 힘겨운 기록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전성원 작가는 스스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소가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어 씹는 ‘반추’라는 단어로 요약했으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권의 책을 정성껏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인생처럼 '읽기' 역시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독하고 고유한 인간의 활동이다. 이러한 숭고한 과정을 거친 뒤에 쓰이는 독후감이야말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서평이라고 할 수 있다. 서평 모음집이지만 이 책을 단순히 그동안 저자의 글쓰기 발자취를 축적한 결과물로 취급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삶 자체를 담고 있는 서평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평과 인생 이야기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전성원 작가는 당연하고 쉽게 설명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이 만만한 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와 생소한 제목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폭넓은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지성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사회를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으로 책 전체의 분위기는 무겁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의 향연은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다. 절절한 인생 경험에서 나오는 저자의 통찰력이 느껴지는 문장은 그래서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부 「시대와의 공명」에서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염무웅(삶창, 2015)에 관한 서평으로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라는 글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지옥은 ‘진실이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그것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통치자가 독재자인 줄 알면서도 그가 대놓고 나를 핍박하지만 않는다면 기꺼이 스스로의 영혼까지 속일 용의가 있는 세상,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시인 딜런 토마스는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옥을 물리적 고통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정의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에 동의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진실을 기꺼이 배반할 수 있는 공간, 배반이 합리적 선택으로 인정받는 사회, 정의가 비웃음이 되는 문화가 곧 지옥이다. 이러한 지옥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망각 때문이다.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달콤한 유혹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냥 과거를 반복하자는 말일 수도 있다. 희망찬 내일을 위해 잊혔던 과거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이면 지옥이 된다. 불편하다고 숨기고, 임시방편 거적때기로 덮어보지만 추악한 악취는 피할 길이 없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모호한 지옥은 결국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친다.


우리에게 8·15는 광복이었을까, 해방이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광복절은 우리 민족의 해방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개인 영달의 기회로 삼았던 친일파들의 해방이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친일파들은 눈치를 볼 사람마저 사라졌다. 해방 이전까지 친일파들은 일본이란 상전을 모시고 자국민을 지배했지만, 광복 후에는 받들 상전조차 없이 지배하게 되었다. 요즘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적나라하게 느끼곤 한다. 권력의 이전만이 있었을 뿐 민족의 해방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반복되듯이 역설도 반복된다고 했던가, 대한민국의 독립과 이어진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냉전체제를 낳았다. 해방된 조국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빨갱이'라는 단어는 친일파들을 위한 면죄부로 혁혁한 공을 세운다. 모두가 망각하길 기원했던 그들(친일파)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현재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한참 동안 쌓인 망각의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망각은 비극의 반복을 초래할 뿐이다.


기억하는 이유는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망각과 기억 중, 망각을 선택하는 자들의 의도는 한결같다.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시시한 과거는 잊어야 한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밝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기억이지 망각이 아니다. 망각은 밝은 미래가 아니라 침울한 후회와 비극을 낳을 뿐이다.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생각하며 살지 못하는 삶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관, 주체적 사유가 없는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옥에 이르지 않으려면 아무리 중요한 사실이라도 누구나 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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