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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Mar 04. 2022

법치주의


이명박 정부 시절로 기억한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법치주의'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갑론을박하며 치열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법조인(판사) 출신의 한 정치인이 당시 사회가 불안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후퇴하고 있는 근거로 국민 개개인의 준법정신의 부족, 다시 말해 법치주의 정신의 결여라고 분석했다. 사회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당시에도 그 정치인의 발언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애국심'을 강조하며 감정적인 호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도 문제였지만, 소위 사회 엘리트라 할만한 법조인이 법치주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것은 논리 전개에 커다란 맹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법치주의는 단순히 법을 잘 지키는 것을 장려한다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법의 통제의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나 정부 그리고 그와 관련된 권력기관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단지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실 법의 역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국가라면 언제나 올바르고 정의로운 정부의 말씀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되지 법에 의한 통제는 필요 없다.


예일 대학교의 뛰어난 사회심리학자였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 박사는 1961년과 1962년에 걸쳐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설계한다. 피실험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냈을 때 학생이 틀리면 교사가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실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는 배우였으며, 전기 충격 장치도 가짜였다.


본래 실험의 의도는 인간의 도덕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아무리 명령이 있는 상황이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심에 따라 행동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65%의 피실험자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밀그램은 사람들이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계속하라고 지시하고 계속 거부하면 실험을 중단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결국 지시를 따랐다. 적극적으로 실험을 저지하려 들거나, 죽은 것처럼 반응이 없는 학생을 도우려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단지 더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나라 사랑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국가를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본 나라보다, 국가 사랑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나라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는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금방 깨닫게 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은 애국심이 인종차별과 대량학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이렇게 한 정부의 괴물화를 막아야 할 법조인, 법률가들이 오히려 권력의 굴복하여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성의를 보인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법의 이름으로라는 명분으로 저지른 그들의 인간 존엄성 파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권을 유린할  있는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일제 강점기와 군부 독재 시절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세력에게 끔찍한 고문과 갖은 핍박을 가했던 것은 판사, 검사와 같은 법조인들이었다. 정의와 공정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권력의 수족이었던 친일파를 비롯한 수구세력 아직도 평안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법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이다. 법조인들은 이러한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막강한 권력 기관들이 국민을 상대로 인권유린과 같은 폭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법조인들의 중요한 소임 중 하나이다. 하지만 법조인들이 자신의 소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남용했을 때 우리 사회의 정의는 무너지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용납되는 끔찍한 일이 만연하게 된다. 법조인들이 권력의 '사냥개'나 지배층의 '시녀'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가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 국민을 버리며 한강 다리를 잘랐던 사람부터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했던 사람까지 우리는 많은 대통령을 만들어 왔다. 법조인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이 국민들의 정치 참여이다.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을 정당하게 사용할 절호의 기회이다. 법치주의가 준법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적절한 통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관철한다는 의미에서 꼭 선거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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