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
과학이 인문학을 비롯한 여타의 학문보다 지금과 같이 큰 영향력을 가진 데에는 '영원한 진리는 없다'라는 특별한 기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진리처럼 보이는 현상도 언젠가는 반박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만 한다(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과학에서 유일하게 참으로 인정하는 명제는 오직 이뿐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가설을 세울 때는 그 가설이 영원히 의심받고 반박당할 것이란 각오가 필요하다. 최초의 가설일수록 반발은 더욱 격렬하고 오래된 가설일수록 다양한 저항이 존재한다.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과학자에게 필요한 재능이 탁월한 지능이 아니라 불굴의 용기였다.
실례로 지동설이 상식이 되기까지 가혹한 종교적,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는 일이 과학적 증명보다 힘들었다. 과학 내에 서로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구 증가와 문명의 발달로 과학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론이 정교해질수록 분야는 더욱 세분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과학적 지식이 발달하자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코스모스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얼마나 하찮고 가여운 존재인지 스스로 깨달았다. 지금 잠시만 틈을 생각해 보자. 과연 인간이 온전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게다가 지구에서 영원처럼 긴 시간을 진화해 왔지만, 대기권을 벗어나면 단 1분도 버티기 힘든 게 호모 사피엔스다.
결국엔 과학이라는 뭉툭한 개념으론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고대 그리스에선 모든 학문을 철학이라 불렀지만, 이제는 유전학과 물리학을 같은 학문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미있게도 어떤 물리학자가 '자기가 알고 있는 이론으로 생명을 설명해 보면 어떨까?'라는 흥미로운 고민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생소한 책은 이렇게 재미있는 배경에서 시작한다. 덧붙여 필자가 과학을 지나치게 맹신한다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시인이 과학자의 열정에 감동하고 과학자가 시인의 시련을 알아주는 것, 인문학과 과학은 서로를 통해 더욱 깊어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33년 파동역학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한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 그는 특별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생명이라 무엇일까? 간단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물리학자의 대답이 ⟪생명이란 무엇인가⟫이란 책이다. 이 책이 인류사에서 아직도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1) 생명을 포함하여 세계를 총괄적으로 설명해 보려는 치열한 탐구 정신, 그리고 2) 그러한 정신의 바탕이라고 여겨지는 학자와 인간으로서의 겸허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생명에 관해 우리보다 훨씬 정교하게 설명할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과학자가 일반인보다 학문적인 시각에서 생명을 논할 수 있겠지만,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생명의 정의는 달라진다.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대가였던 슈뢰딩거도 생명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생명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는 양자역학의 질서를 엄격히 지키는 존재였다. 양자역학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벗어난 미시세계의 법칙이다.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힘든 물리법칙이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물질의 불연속성이다. 물리법칙을 설명하려면 결국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에 관한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다. 그 원자들이 변화하는 질서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물질의 불연속성이란 원자 단위에서 보이는 존재들은 불연속적 변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유전자가 영속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유전자도 결국 원자 단위로 구분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은 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을 ‘질서와 무질서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변화와 보존의 절묘한 조화가 결국 생명의 실체라는 것이다.
유전물질의 일반적 형상에 관한 델브뤽의 모델로부터, 생명을 가진 물질은 지금까지 확립된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물리법칙들'도 포함할 것 같다는 견해가 도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물리법칙들'은 제대로 밝혀지게 되면 전자, 즉 알려진 법칙들만큼 이 학문의 주요한 부분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의 진정한 저술 목적.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을 예상한 것일까?!
생명은 질서가 무질서로 전환하는 경향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되고 있는 질서에도 부분적으로 근거하는 물질의 질서 정연하고 규칙적인 현상인 것 같다.
▶︎ 물리학자가 제시한 생명의 정의
열역학적 평형, 즉 죽음으로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신비하고도 탁월한 재능을 통계이론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산다.” 다시 말해 음의 엔트로피의 흐름을 자신에게 끌어당겨서, 살아가느라고 만든 엔트로피의 증가를 보상하여 비교적 낮은 엔트로피 수준에서 일정하게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질서’를 얻어내어 유전된다.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그의 책이 주제를 재미있는 듯이 만들었고 초보자들에게 사물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추구해 볼 만큼 흥미로운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점이다.
▶︎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정확하지 않은 가설과 논지의 공백이 있음이 분명한데도 과학사에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고전이 된 이유. 물리학자가 바라본 생명체의 비밀이라는 주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과학은 이렇게 새로움을 향한 거침없는 도전이 중요하다.
생명의 물리학적 고찰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생명의 본질이 궁금한 분
과학적 사유를 즐기는 분
DNA의 유래를 알고 싶은 분
생명이란 무엇인가
저자 : 에르빈 슈뢰딩거
번역 : 서인석 , 황상익
출판 : 한울(201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