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Dec 02. 2023

사랑... 하고 있나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1.

돌이켜보면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길었다. 무더운 여름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처럼 내향형 인간에게는 반갑기만 한 계절은 아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습도까지 높은 날이면 책 읽기와 글쓰기는 고사하고 밥 먹는 일조차 쉽지 않다. 계절이 돌아오면 매번 반복하는 일이지만 망각과 희망에 중독된 인간은 오늘도 지나간 여름은 금세 잊고 다가온 가을만 기억한다. 글의 시작을 계절로 여는 것이 상당히 진부하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고전'이란 칭호를 받는 것처럼 익숙함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계절은 인간에게 물리적, 정서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상과 너무 밀접해서 상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기 쉽지만) 계절은 어떤 책을 읽을지 결정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시원한 냉면 생각도 간절하지만, 끝없는 설원이 배경인 러시아 소설도 읽고 싶다. 우울한 비가 하염없이 떨어지는 날이면 동동주만큼 그리운 것이 황순원의 ⟪소나기⟫다. 차분하게 눈이라도 내리는 밤이면 침대에 파묻혀서 사강의 톡톡 거리는 문장이 읽고 싶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런 날 읽는 게 제격이다. 동시에 벌써 가을이 지겨워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기다리며 읽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연애의 결말은 항상 자기 뜻대로 끝나지 않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봄보다 가을에 어울린다.


이 작품은 분량도 적을 뿐 아니라 서사 구조는 간단하다. 서로를 애증 하는 세 남녀의 연애 이야기. 조금 자세히 풀어보면, 실내장식가인 폴(여성)은 로제와 오랫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해 왔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던 폴과 달리 로제는 일탈을 꿈꾼다. 이때 등장한 순수 청년 시몽, 폴과 묘한 인연이 싹트기 시작한다. 인간의 연애 감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삼각관계, 거기에는 사랑도 열정도 그리고 애증도 모두 부질없는 상념일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시시하고 상투적이라 책을 읽지 말라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절대 그런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독서 권태기를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마지막 문장부호가 물음표가 아닌 줄임표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인 프랑수아즈 사강도 책을 출판할 때 이점을 강조했다. 소설 속에서는 39세의 커리어 우먼인 폴이 25세의 변호사 시몽에게 받은 초청 메시지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의문문으로 등장한다. 이 편지의 질문을 보고 폴은 처음으로 시몽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저자가 물음표가 아닌 줄임표로 제목을 선정한 이유는 시몽의 질문보다 그 질문을 받은 폴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자기 생각을 제목 속에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결말을 잠시만 언급하자면 허망하게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 간에 삼각관계로 갈등을 빚는 상황은 매우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것 같지만 의외로 모든 인물은 덤덤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상황을 맞이한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사랑이란 것이 감정의 한 종류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무한한 직선은 곡선을 갈망하고 익숙함은 권태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기는 해도 감정은 드러내지 않을 때 더 애틋하고, 이상은 머릿속에 있을 때 더 완벽하다.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은 각자 다른 사랑을 꿈꿨다. 과연 나는 어떤 인물에 더 가까운지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는 하나의 방법이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서사의 탄탄함보다는 등장인물의 감정과 대사가 중요한 작품이다. 아울러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와 감각적인 문장이다. 1959년 발표했으므로 6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이다. 그러한 시간의 격차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문체와 서사 구조를 가졌다. 책의 첫 문장에서 결말을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독자를 사로잡는 천재적인 문장들의 향연은 모든 작가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연애와 사랑을 할 때 남녀 간의 솔직한 감정선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찰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 이 작품을 읽으면 반드시 기억하게 될 대사. 저자인 프랑수아즈 사강 자신에게 하는 말, 혹은 이 책을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사강이 하고 싶은 말.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다.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 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도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 눈처럼 소복하지만 호수 위의 파문처럼 톡톡 거리는 사강의 문장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좋다. 따라 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면 이런 문장이 아닐까. 특히, 푸른 쪽지라는 표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색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탁월한 표현이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 싱그러운 날씨와 햇빛은 그녀를 웃게 만든 배경이 되었고, 푸른 편지는 더욱 그녀의 마음을 여는데 촉매제가 되었으며 마지막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웃음이 되었다.


3.

사랑의 열정과 익숙함을 다룬 소설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필사할 좋은 문장을 찾고 있는 분

가볍지만 깊은 여운을 가진 책을 읽고 싶은 분

사랑 때문에 고민 중인 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자 : 프랑수아즈 사강
번역 : 김남주
출판 : 민음사(2008)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전 04화 식민지를 살았던 작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