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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변주곡 (하)

by COSMO

3.

브런치 작가로의 여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깃허브(GitHub)라는 플랫폼에서 직접 만든 개인 블로그가 그 출발점이었다. 그곳에서 소소하게 서평을 올리며 나름의 실험을 이어갔지만, 방문자는 없었다. 블로그는 늘 텅 비어 있었고, 글은 혼자만의 무대에서 홀로 쓰는 독백 같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도 보지 않던 그 외로운 시간이 결국 내 글쓰기의 근육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던 글들은 내가 가진 고집과 인내심을 단련시키는 시간이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신청했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브런치라는 공간에 내가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승인이 났고, 나는 글을 쓸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첫 글을 올리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회수는 낮았고, 댓글 창은 비어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아무도 읽히지 않는다는 현실은 내게 큰 벽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버티게 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순간이었다. 나를 위로하고,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리하는 과정이 글쓰기였다.




그렇게 혼자만의 글을 쓰던 어느 날, 내 글에 첫 댓글이 달렸다. “좋았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었지만, 내게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댓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사실을 믿으려 애썼다. 그 한 줄이 내 안에 있던 작은 불씨를 살려냈다. 이후로 글쓰기는 조금씩 더 큰 즐거움이 됐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들고,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글을 쓰는 일이 더욱 소중해졌다. 나는 글을 통해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댓글 하나가 가져온 변화는 내 글쓰기에 큰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글은 단순히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됐다. 독자들과의 교류는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변화했다. 내가 가진 이야기를 글에 담아내고, 그것을 통해 독자와 연결되는 경험은 내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글은 이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글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따뜻한 칭찬,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이 모두 내 글쓰기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깃허브에서의 외롭고 조용했던 블로그 시절은 이제 먼 기억이 됐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를 준비시킨 밑거름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블로그에서부터 시작해 브런치라는 무대에서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지금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 댓글 하나에 울고 웃던 초보 작가는 이제 더 단단한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글쓰기는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힘이다.


4.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떠올린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장르를 초월한 감동과 시간을 뛰어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우주라는 무한함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과학의 언어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도, 세이건은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냈다. 그에게 과학은 단순한 데이터나 이론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내 삶의 자리와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서 있는 이 작은 지점이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 책이었다.


세이건의 문장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경이로움을 시처럼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글은 정보의 전달을 넘어,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내 안의 호기심과 질문이 다시 깨어났고, 그 질문들은 나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세이건이 우주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느낀 이 감동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을. ⟪코스모스⟫는 단순히 읽고 지나가는 책이 아니었다. 내게 글쓰기의 씨앗을 심어준 책이자, 독서에서 글쓰기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특별한 동반자였다.


책을 통해 얻은 감동은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표현의 욕구,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그리고 미적 열정.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글을 예술로 승화하려고 나는 글을 쓴다.” 이 짧지만 강렬한 문장은 글쓰기에 담긴 책임과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글은 단순히 나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오웰의 이 말은 글을 쓸 때마다 나의 글쓰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릴 때는 이런 철학적 질문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일단 10편만 써보자.” 그게 전부였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쓰는 경험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글쓰기가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다. 내 글이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글을 하나둘 쓰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장을 하나 쓸 때마다 지우기를 반복했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내가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혼란스러웠던 내 머릿속을 정리해 주었고, 글을 쓰면서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그렇게 10편을 목표로 시작했던 글쓰기가 어느새 100편을 넘어섰다. 숫자는 단순히 글의 양을 나타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글쓰기 태도는 크게 변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썼다면, 이제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거나, 새로운 시선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글쓰기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여준 독자들,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 사람들. 그들과의 소통 속에서 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짧은 칭찬 한 마디, 따뜻한 댓글 하나가 내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글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세상과 연결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게 했다.


삶은 거창한 성취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박하지만 마음을 채우는 꿈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일이 훨씬 값지다.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고,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발견하는 일처럼. 이제는 그런 소소한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된다. 효율을 핑계로 미뤄왔던 나의 진짜 욕구와 관심을 더 이상 뒤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글을 통해 남기는 작은 흔적들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해준다.


오늘도 나는 책장을 넘기고, 한 줄씩 글을 써 내려간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내가 남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여운으로 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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