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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04. 2021

지식인의 표상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 책리뷰

‘기레기’ 말고 ‘기자’가 쓴 기사 찾기가 무척이나 힘든 현재의 대한민국. 리영희 선생은 담담하게 ‘진실’의 추구가 정답이라고 조언한다. 『전환시대의 논리』 는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학자 리영희 선생이 우리나라에 허위의 의식을 깨고 현대사와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기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기자 풍토의 하나의 특징은 남의 권리쟁취나 민주화•자유화 운동에는 당사자처럼 열을 내면서도 자체 내부의 권리투쟁이나 민주화나 자유화는 아직 원시적 상태라는 현실이다.


1971년에 기고한 칼럼에서 발췌한 것이지만, 요즘 읽어도 전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고, 오히려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다. 그들만의 리그, 특정 언론의 독점과 배척이 넘쳐난다. 우리의 언론환경은 경언유착을 넘어 이제 검언유착에 도달했다.


저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 북한의 간첩이나 용공분자로 몰리지 않으려면 질실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했고, 진실을 알아버린 경우에는 그것을 남에게 말하지 말아야 했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비굴과 자기 모독, 그리고 지적 암흑 상태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영희 선생은 1964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관련 특종기사를 썼다가 반공법 위반 협의로 구속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무려 아홉 번 체포되었고 다섯 번 징역형을 받았으며 직장이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쫓겨나야 했다. 이런 엄혹했던 시절에 불구하고 기사와 칼럼을 통해 군부독재에 대한 그의 날 선 비판은 계속된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회주의 중국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베트남 전쟁, 일본의 재등장, 한미관계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편협하고 왜곡된 반공주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계몽적 정신을 담고 있다. 비록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과 괴리감은 있지만, 50여 년 전 정보가 부족했던 암흑의 시기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일본이나 군부에게는 민감하고 불온한 서적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특히 저자가 파악한 베트남 전쟁의 실상은 우리가 당시 기성 언론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베트남 전쟁의 전개

베트남 사태는 크게 나누어 4단계의 정세발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①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1863년 5월)부터 제2차 대전 종전까지 근 100년에 걸친 베트남 인민의 식민지 민족 항불해방투쟁.

② 전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1945년 9월)부터 전후 베트남 민족해방 항 불전 쟁의 승리를 고한 인도차이나 휴전협정 성립(1954년 7월)까지의 투쟁.

③ 남베트남 공화국 수립(1955년 10월)과, 그것으로 베트남의 통일을 위한 제네바 협정의 총선거 실시 협약이 사실상 일방적으로 폐지되고 베트남의 반영구적 분단이 고정된 사태.

④ 그 이후 남베트남에 내란이 일어나고 미국과 북베트남이 개입함으로써 미국과의 전쟁으로 변모, 확대된 현상태.

베트남 사태가 미국에 전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시초부터 1973년 초에 종전에 이르는 긴 세월을 통해, 대 북베트남 대 라우스, 대 캄보디아 그리고 대 중국 예비공격•예비전쟁•선재공격의 이론과 방법론을 짜낸 가장 반공 십자군적 강경론자가 군부의 장성이나 제독이 아니라 일개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우라는 사실은 베트남 전쟁사의 한 중요한 사실이 되어 있다.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 전쟁, 하지만 미국인중 자신은 물론 베트남이 왜 전쟁 중인지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자인 리영희 선생은 넓은 세계적 관점에서 냉철하고 과학적 시선으로 민주시민운동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독재의 침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 계몽 활동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보의 암흑기 시대에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책이 미래에 또 다른 전환시대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읽고 세상을 뒤집어 판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지성인의 최고의 덕성은
인식과 실천을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 이 책은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개정판에 새로 쓴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가 평가한 이 책의 역할과 의미는 1) 허위의식을 타파하는 현실인식의 기틀 마련 2) 편협하고 왜곡된 반공주의를 거부하는 넓은 세계적 관점 제시 3) 냉철한 과학적 정신을 계몽하고 민주적 시민운동의 앞장서는 이론적 역할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의견은 '동의, 인정합니다'일 것이다. 나도 물론 저자의 자전적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리영희 선생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소양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진정한 언론인이자 스승이었다. ‘지식’이 뇌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과 발로 이어질 때 ‘지혜’가 된다.


이 책은 국가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것을 뛰어넘어,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양인 혹은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등대’와도 같은 책이다. 진실을 향한 끝없는 성찰, 자신의 생각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삶, 폭풍우 속에서도 진리를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이러한 것들의 소중함을 리영희 선생은 글과 실천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2021 코스모’s Best Book Award​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 창비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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