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탄생한 생명은 ‘제대로 죽기 위해’ 삶을 꾸려가게 되며 이를 ‘인생’이라고 일컫는다. 아무도 생존본능을 인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단지 의학적인 생명 연장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거창한 민족, 국가, 공동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개개인 별로 자기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유용한 것을 만들고, 자신의 경험을 번영을 위해 공유하는 것처럼 적어도 삶이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역사가 필요하다. 결국 삶을 가치 있는 인생으로 채워가며 자기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도 힘들어한다. 삶이라는 단어 앞에 '제대로'라는 부사를 붙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도 이 사실을 알았기에 위와 같은 '격언'을 남겼으리라.
이 격언이 유행했던 기원전 4세기 무렵 코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유동적이며, 판단은 어렵다."라는 말을 남겼다. 주술적 의학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의학을 창시했던 그는 21세기인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의사들의 잠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가 의사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정했지만, 당시 노예제도는 자연현상처럼 여겨졌다. 여성, 아이, 전쟁 패배국 시민은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인의 재산처럼 취급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은 의료 윤리, 차별 없는 생명 존중, 의사의 의무 등을 말한다. 또한 자신의 의료 행위를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의학 발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의사를 넘어 인류학자에 가까웠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산 의사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
지리학은 대부분의 고대인이 겪어야 했던 지독한 배고픔에서 출발했다. 결핍은 창조와 혁신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학문이란 적절한 통찰력, 시행착오, 진리 같은 것들이 절묘하게 혼합되는 가운데 서서히 축적되어간다. 『히스토리아』(Historiai는 그리스어로 조사를 의미한다)라는 책은 그렇게 저술되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천재성과 열정은 역사와 지리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의 출발점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헤로도토스가 『히스토리아』를 저작한 이유는 서문에 분명히 나와 있다. “내가 특히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인과 이민족 간에 생겨난 적대감의 원인이올시다.” 두 문명의 갈등의 원인을 2500년 전을 살았던 역사학의 시조도 궁금해했다. 재미있는 것은 21세기인 현재도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는 목적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통찰을 기록으로 남긴 그의 저서는 수없이 많은 고전의 참고문헌이 되었으며, 책 속에 담긴 특별한 문장들은 역사학의 대가들의 저서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용문이 되었다. 헤로도토스가 그저 생존본능에 익숙한 인간이었다면 아무도 그를 역사학과 지리학의 아버지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호한 목적은 결국 아테네의 '구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에도 아테네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다. 기원전 399년 법정에 제출된 기소장에는 두 가지 죄목이 명시되어 있다. 신을 믿지 않은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였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말처럼 그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대면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그의 지론대로 실천했다. 자신의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아테네도 변할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통해 제대로 된 철학자로 살았던 그의 희망과는 다르게 아테네를 포함한 그리스의 운명은 소크라테스 사후로 내내 내리막길을 걷는다. 삶을 생존본능이 전부인 것처럼 여겼던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걱정을 그가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플라톤을 거쳐 중세 기독교로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헬레니즘으로 발전한다. 한국의 교과서에서도 철학의 시조로 항상 언급된다.
제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세 음절에 불과한 '제대로'라는 부사를 삶 앞에 붙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 제대로 해보기 위한 노력마저 포기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점점 피폐해질 것이다. 인생을 생존본능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역사를 묵묵히 써 내려간 고대 그리스인들을 떠올리며 제대로 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본다면 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데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