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와 <타임>에서 잔뼈가 굵은 논픽션의 대가도 새로운 글을 쓰는 순간은 설렘과 희망보다는 위기와 절망에 가까웠다. 어제 썼던 글이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어도 지금 쓸 문장을 잘 쓸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글을 쓰기 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도 해보고 마음을 다잡고자 차분한 음악도 틀어놨지만 모니터에 무심하게 깜박이는 커서는 비 오는 날 떠났던 애인처럼 보인다.
내가 썼던 단어와 문장뿐 아니라 마침표마저 자신이 없어 보인다. 사방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기분이다. 다음 문장도 어떻게 마무리할지 모르는 것은 나의 재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글이 실패라는 생각은 확신으로 바뀐다.
하지만 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작가는 아니다. 작가는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시작할 땐 사막처럼 막막했던 일도 일단 어느 정도 진행하고 나면 끝이 보인다.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한 단어, 한 문장,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내 생각이 정리된다.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는 힘은 '그냥 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결코 성공적인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험난한 고민의 여정도 작가가 되기 위한 자격이다. 오히려 뛰어난 관찰력과 감각적인 묘사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나만의 방법이 언제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다. 자신의 글에서 한심한 오류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작가일 수 있을까?
나의 글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 긍정적인 변화도 없다.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이 쓴 글이 각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우선 생각하자. 고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변화는 더욱 극적일 것이다. 오직 계속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