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필요'와 '기능'의 우선순위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드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당연히 게임에 필요한 규칙을 숙지해야만 한다. 그래서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매뉴얼도 읽어보고 친구에게 설명도 듣지만, 막상 게임이 시작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상대방이 기뻐하는 이유도, 실망하는 이유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벌써 두 번이나 졌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아까 읽었던 매뉴얼의 설명이 떠오른다. '그게 이거 말하는 거였구나' 친구의 설명도 차츰 이해가 간다. 운 좋게도 마지막 게임은 승리!
승리의 원인을 친구를 이기겠다는 간절함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필요와 기능의 우선순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작정 매뉴얼을 독파한다고, 친구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고 게임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실제로 진행하면서 필요한 규칙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제대로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엑셀을 처음 써볼 때를 기억하는가? 수많은 기능과 셀의 막막함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타닥타닥 일단 숫자를 입력해 본다. 간단한 표하나 작성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무래도 공부를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잘 쓰고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강좌도 찾아보고 책까지 한 권 구매했다. 그런데 이번엔 공부 자체가 또 하나의 벽처럼 느껴진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번 달 가계부를 작성하려면 합계를 구하고 정렬하는 기능 정도만 알아도 될 것 같다. 범위를 좁혀 '엑셀에서 합계 구하기'와 '정렬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해서 또다시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하지만 평생 잊어먹지 않을 유용한 기억을 하나 얻었다. 엑셀의 꽃인 함수의 사용도 비슷했다. 모든 함수의 기능을 알려는 욕심을 버리고 필요한 함수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적응해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왜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다양한 응용도 가능하다.
글쓰기를 배울 때, 요리를 배울 때, 술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론을 겸비한다는 명목으로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서 기능을 철저하게 갖추어 놓아도 정작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 직접 글을 써보고 어휘력의 부족함을 느끼고 하는 공부, 애인에게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주고 싶어 유튜브를 찾아보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 필요가 있어서 술을 배우는 것. 이렇게 필요해서 배우는 것들은 무작정 배운 기능보다 훨씬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써먹을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앞서가고 싶은 생각에 기능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필요한 것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