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관계에 얽매이는 곳도 없다. 관계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한번 더 확장된다. 자신이 속한 동호회, 향우회, 동문회 등을 떠올려 보라. 한국의 급속한 발전 속도를 고려하더라도 절대적인 수가 과도하게 많다. 그리고 일정한 관계망을 벗어나려는 개인은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그 속에 안주하려 한다. 내 삶을 내 생각처럼 살아가기가 정말 힘든 것이 한국의 개인이다. 개인은 존중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된다.
개인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솔직한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것이 미덕이고 보편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과 병의 구분이 모호한 것이 한국사회의 특성이다.
우리가 감정을 병처럼 취급했던 이유는 관계에서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속일수록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감출수록 유리하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삶을 괴로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옥희 교수는 『인간관계론』에서 자기 객관화란 '자신을 객체로 알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자신, 남들이 보는 자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해보는 것을 '감정 객관화'라고 한다면, 감정과 병을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 객관화'라고 생각한다.
감정 객관화란 결국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다. 슬픔, 화남, 사랑, 즐거움 등의 감정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감정에 솔직한 것은 병이 아니라 과도한 관계망 속 개인을 존중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방법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은 영원히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