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稱讚]
다른 사람의 좋고 훌륭한 점을 들어 추어주거나 높이 평가함
발표는 고사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말 주변도 없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쭈뼛쭈뼛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찌질이 시절,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눈치 보느라 정작 중요한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글을 쓰고 라이킷과 구독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고 할만한 변화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본다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변화를 이끌었던 것은 따뜻한 칭찬이었다.
"OO는 줄거리 요약을 잘하네. 선생님이 필요해서 그런데 이것도 요약해 줄래?"
"OOO! 생긴 거 같지 않게 이런 거 조립 잘하네? ㅋㅋ 다음에도 같이 하자고!"
"OOO 대리 아니었으면 이번 프로젝트 드롭될뻔했지, 덕분에 잘 풀렸어 고마워."
왜 차가운 비판과 질책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따뜻한 말은 사람도 변하고, 고래도 변하고 다 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칭찬을 들었을 때 칭찬과 나의 모습은 세 가지 유형의 관계를 맺게 된다. 우선 첫 번째로 내 모습보다 부족한 칭찬일 경우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정확히 상대를 파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로의 단점도 장점도 모르기 때문에 인연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면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가진 능력보다 부족하게 나를 평가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자, 당연한 것이다. 사실 칭찬의 특성상 부족한 칭찬을 듣는 것은 매우 드물다. 걱정할 것은 이유 없는 비난과 비방이지 부족한 칭찬이 아니다. 칭찬을 의도적으로 부족하게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중할 경우의 수는 아니다.
두 번째로 칭찬과 내 모습이 일치하는 경우이다. 누군가 나를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칭찬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행복한 상황이다. 부족함과 지나침 사이의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지점, 중용의 미덕이란 이런 것이다. 칭찬을 받는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충분히 즐기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 사람을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면서 매우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칭찬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다. 즉, 누군가를 칭찬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정확히 칭찬할 것인지는 지금 하는 논의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청자보다는 화자의 입장이 중요한 경우이므로 논외로 하겠다.
마지막 세 번째는 칭찬이 현재의 나보다 과한 경우이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우의 수이다. 아무리 공들여 쓴 글이라도 댓글 중에는 칭찬도 비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하는 것은 칭찬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진중히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말은 따뜻한 칭찬이다. 댓글을 달고 팔로우를 해주는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가 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나를 실제의 나보다 좋게 말하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듣는 순간 조금은 쑥스러워지게 했던 그 좋은 말들은 나의 변화에 가장 쓸모 있는 처방전들이다. 상처되는 말과 나의 사정은 모르면서 쉽게 하는 충고는 잊고 소중한 칭찬을 떠올리며 나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반대로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