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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an 09. 2022

희망의 유산


지금 당장 저기에 갈 수 없지만
별을 보고 방향을 찾으면서 우리의 갈 길을 가야 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나 그 꿈이 없다면 우리의 현실이 너무 비천할 테니까.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매번 입에 올리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떨어진 이상주의자로 취급받기 쉽다. 그러한 단어들은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못 되는 관념적인 어떤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로 멋진 이상향을 꿈꾸고,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을 생각하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까?


기원전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 부인과 아들을 만날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면  지중해를 떠돌았던 고난의 항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당시 지중해는 인간에게 목숨을 걸어야만   있었던 미지의 영역이지 현재와 같은 여행과 힐링의 상징이 아니었다. 희망은 인간의 목숨과 같은 이었으며 『오디세이아』가 4000년의 세월의 강을 넘어 아직까지도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소규모 폴리스 중심의 고대 그리스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치르고 승리하는 과정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있지만 우선 필자는 그리스 인들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시 아테네 인들이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면, 마라톤과 살라미스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세계지도는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전쟁 승리  있었던 아테네의 전성기도 없었을 것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도 로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를 맞이할  있었던 이유도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이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유럽은 희망의 유산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도 일제강점기에서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친일파와 기득권 그리고 지배세력의 부조리로 가득했던 사회에서 양심 있는 지식인과 서민들에게 희망은  삶의 이유였다. 항일 독립가들이 독립할  있다는 꿈을 꾸지 않았다면 현재의 우리는 한글의 존재조차 모를  있었다. 군부독재의 모진 핍박에 저항했던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글을   없었을지도 모른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 노예제 철폐, 전기의 발명, 달 탐사 우주선, 독일 통일 등 호모 사피엔스에게 희망의 유산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나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나만의 글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데 공감의 희망만큼 효과적인 동기부여도 없다.


우리는 그동안 꿈과 희망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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