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Feb 23. 2022

실패는 가르침이다


이 글귀의 정확한 출처는 『내일의 연인들』이라는 소설의 '작품 해설'로 신형철 교수의 글이다. 발췌된 문장이다 보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므로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설명을 보태자면, 『내일의 연인들』은 정영수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으로 내용은 화자(주인공) 혹은 그 주변 인물들의 ‘연애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도 결국 인간관계라는 큰 카테고리에 포함할 수 있다. 그리고 연애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더 서글픈 것은 그러한 연애의 결말이 실패에 가까울수록 '성장'의 폭과 깊이가 더해진다는 사실이다. 소설에서도 이런 실패를 통한 성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성장의 원동력이라니 조금은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글귀에서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가르침과 실패이다.


옛 성현들은 무엇인가 잘 배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고민하고, 잘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야 한다. 이처럼 배움이란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일 때보다 공급하는 입장일 때 더욱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배움이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다. 살 때보다 팔아야 할 때 그 물건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선택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의 마음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쳐 본 경험은 어떤 배움보다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배움을 위해 강의만 고집하는 수동적인 자세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강의만 들으면서 자신에게 커다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로또 당첨으로 인생 역전을 바라는 도박꾼의 요행과 다르지 않다. 직접 고민한 적 없는 문제는 금세 망각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린다. 단편적인 정보는 반복, 실천, 응용 등을 거쳐야 나의 지식이 된다. '가르치는 자'가 되어보는 경험은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본질이다.


한편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르치는 과정에서 실수는 당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배움이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실수를 자세히 파악하고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정확히 대면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을 확인하여 방향, 속도, 방법을 바꿔서 시도하는 등 실수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로 이어진다. 개선 없는 실수는 언제나 실패의 어머니이다.


게다가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배움을 주려 했던 선생도, 가르침을 받으려 했던 학생도 실패할 수 있다. 시간만큼 실패도 공평하다. 중요한 것은 실패도 실수처럼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생각과 태도이다. 특히 자신의 실패뿐 아니라 타인의 실패까지 배움의 밑거름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많은 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선생이든 학생이든 마찬가지이다. '가르치는 자의 실패까지도 가르침이다'라는 문장은 사실 '모든 실패는 가르침이다'라는 문장의 특수한 경우이다. 학업, 연애, 직업, 인간관계, 운동 등 무엇이 되었든 배움의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가르치는 입장이든, 배우는 입장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 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면 그리고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면 모든 실패를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실패는 물론 타인의 실패에서도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의 실패를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에 의해서가 아니라 앎을 실천할 때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지식이 머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거쳐 손과 발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지식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실패와 실수를 외면하며 멀리했다면 이제부터는 똑바로 바라보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자. 그렇게 작은 시련의 언덕을 넘으면 아테나의 미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읽기


이전 13화 독서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