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사계절 출판사, 2021)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로, 처음에는 우주와 같은 극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증강된 인간을 만들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이렇게 미래에 완성될 추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사이보그라는 단어는 현재에 이르러 문화, 환경, 산업 등과 융합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릴 적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의 주인공이 사이보그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모니터 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이보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되려는 장애인 사이보그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처럼 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 3,000명(전체 인구대비 5.1%)으로 확인되었다. 문명의 진보에 따른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은 과연 믿을만한 사실인가? 오히려 장애인들을 과학 발달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이 현실에 더욱더 가깝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본인이 장애인 이거나 그의 가족이 아닌 이상 우리가 장애인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은 거의 없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뿐 아니라 과학 기술 그리고 이를 맹신하는 사회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깊이 있게 고찰한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작가는 과학 기술의 미래를 모든 문제가 극복될 것처럼 언급하는 사회 분위기와 세계적인 테크 기업의 엘리트나 기술 관료,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기술 유토피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작 현실에서 장애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당사자와 주변인)의 진짜 고민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묻히기에 십상이다.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 시선들은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미래적인 이미지만을 기술낙관주의의 홍보 대사로 내세운다. 두 작가는 이러한 문제점을 책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건강한 미래는 개인의 자립이 아닌 더불어 사는 ‘연립’ 임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부터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들과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오늘의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SF 소설 속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팬이 되었는데, 이번에 읽은 논픽션 글을 통해 또 다른 매력에 빠졌다. 감각장애인이자 SF 소설가, 과학 전공자이자 여성인 김초엽은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과학기술과 창작의 영역 중심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도구와 환경과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모습에 관심을 둔다. 이 책에서 그녀는 과학 기술이 장애인들의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자각(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최근 장애학 연구에서 제안된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온정과 시혜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지식 생산자로서의 주체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김원영 작가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지적인 문체와 풍부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의 문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글쓰기의 교본처럼 찾아볼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번 독서의 큰 성과이다. 지체장애인이자 법률가, 연극배우이며 재활학교와 장애권리 운동 공동체를 경험한 그는 정상적인 신체들로 채워진 공간에 인공 보철과 만난 사이보그가 등장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그는 현실의 사이보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며, 과학 기술이 미래의 희망만을 이야기하기보단 현실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현실과 기술의 건전한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도 함께 제시한다.
기가지니는 수어를 쓰는 김 씨에게 목소리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향하는 대상은 청인들이다. 정작 농인인 김 씨나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들은 기가지니가 만든 목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없다. 그러니까 기가지니가 김 씨에게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다.
기술 발달로 신체적 자유를 선사한다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비장애인 등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인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공감이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싹튼다. 이러한 생각이 상업적 광고로 활용되는 것에서 그친다면(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진짜 장애인들의 요구는 사라진고 만다. 누군가에게는 소리를 더 잘 듣게 하는 기술보다 수어나 문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로봇 외골격보다 휠체어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장애인들의 몸은 설령 같은 유형의 장애라 해도 규격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각기 청각장애(김초엽)와 지체장애(김원영)를 지닌 채 살아온 시간과 장애권리 운동을 실천하며 키워온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타자,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다른 내일을 말한다.
장애 때문에 보청기나 휠체어 같은 기계와 직접 접촉하며 살아온 사람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의 경험과는 분명 다르다. 자신의 신체나 감각이 기술과 만난 경험은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특별한 경험과 정체성을 소유한 두 작가는 과학기술의 미래와 정면으로 대면한다. 이는 단지 기술 유토피아의 허망함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문명의 진보와 기술의 발달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인간은 점점 과학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삶 전체를 기계와 함께해 오면서 겪었을 번민, 불화, 사회적 소외 등의 경험은 인간과 과학기술의 발전적인 관계를 고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두 작가의 '사이보그'로써의 정체성은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사이보그는 이제 인간 연대의 중요한 요소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문명의 진보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사계절 출판사, 2021)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