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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Nov 27. 2021

혁명과 연애의 대비

대위의 딸∙알렉산드로 푸시킨 | 책리뷰

『대위의 딸』은 대단히 낭만적인 연애소설이다.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군인 가문에서 성장한 두 남녀(표투르 안드레이치, 마리야 이바노브나)의 아름다운 해피엔딩 연애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제정 러시아는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농노 제도와 차르의 전제정치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암흑기였다.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시대에 낭랑하게도 연애소설을 쓴 푸시킨의 냉철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엄혹한 시대를 비꼬는 냉철한 푸시킨의 시대정신은 세속적인 두 연인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차르 : 제정(帝政) 러시아 시대의 황제의 칭호.


민중들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으로 야기된 내전과 농민혁명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책에선 이런 암울한 시대상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의 배경 정도로 가볍게 묘사된다. 푸시킨의 이러한 염세적인 태도는 부조리한 제정 러시아를 비꼬는 조소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대위의 딸』은 처절한 혁명의 역사 속에 그려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절묘하게 러시아의 모순을 아름답게 비판한 명작이다.


 책은 신분제의 폐단, 부패한 지도층의 무능함   시절 제정 러시아의 사회적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연애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반란군의 수장 ‘푸가초프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푸가초프 반란은 러시아에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이며, 푸시킨은 『푸가초프 반란사』를 직접 집필한 푸가초프 전문가였다.


푸가초프의 난은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러시아에서 일어난 대농민반란(1773년 ~ 1775년)이다.


또한 황제를 참칭 하며 반란을 도모한 푸가초프와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는 통치자로 예카테리나 여제 등장한다. 특이한 것은  인물 모두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있는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제국의 황후이자 여제(1762년 - 1796년)다.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군주로, 본래는 프로이센 슈테틴 출신의 독일인이었다. 무능한 남편 표트르 3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았으며,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1762년 남편 표트르 3세를 축출하고 임페라토르가 되었다.


제정 러시아 지배구조의 최고 권력자와 그 지배구조의 전복을 시도한 주동자를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다분히 푸시킨의 영특한(?)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 시기의 제정 러시아 상황과 푸시킨이 『대위의 딸』을 집필한 이유에는 분명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연애 이야기의 애절함과 농민혁명의 처절함의 대비(對比)는 푸시킨의 치밀한 계획으로 이루어낸 의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푸시킨!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책의 문체는 저자인 푸시킨처럼 간결하고 정확하지만 강렬하고 아름답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수려함에 여러 번 놀랐다. 이야기의 전개와 사건들은 요즘 읽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우악스럽지 않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러시아 소설은 난해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은 기우에 불과했다. 푸시킨의 시대를 초월한 진보적인 문장들 때문일까, 러시아 문학의 문외한인 내가 읽는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고독과 무위를 자양분으로 하는 음울한 상념 속으로 빠져 들었다.



재미있는 통속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가볍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오래된 소설책에서 볼 수 있었던 우연한 사건들로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는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 혹은 막장 드라마의 작가들은 『대위의 딸』을 여러 번 탐독한 푸시킨의 열렬한 팬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들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제야 푸시킨의 영향력을 인지하게 된 나의 무지함을 반성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비난해 왔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 『대위의 딸』은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는 타이틀만큼 훌륭한 고전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다 읽지 못한다면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는 명언은 독서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말이었다.


겨울이 되면 로맨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차디찬 서릿바람과 황량한 풍경이 가득한 계절이 오면 가슴속에 숨겨왔던 외로움은 더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고립과 결핍에 대한 생리학적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쓸쓸한 감정을 다독여 줄 소설을 찾고 있다면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즐겨보길 권한다. 광활한 겨울 왕국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아름답고 매력적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분명 상상 이상의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모두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대위의 딸•알렉산드르 푸시킨 | 열린책들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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