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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토끼 Dec 12. 2023

밤 9시, 당직근무 중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 별은 뭐예요?

당직 근무 사전적 정의는 근무시간 외에 그 기관의 업무 처리를 대신해서 근무를 하는 .

제가 일하는 곳은 저녁 6시부터 밤 9시까지, 청소년이 센터에 입소해 숙박을 하는 날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당직 근무를 합니다.


대충 365일 중에 300일 정도 그런 날을 보냅니다.


아, 그렇다고 날을 새서 일하는 건 아닙니다.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취침 시간입니다. 돌아가면서 진행하기에 보통 1달에 한 번 정도 차례가 옵니다.

당직 근무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고요한 공간 너머로 밤하늘 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립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그 마저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무실을 채운 형광등 불빛이 전부죠.

조용했던 당직 근무가 소란해진 건 전화 한 통 때문이었습니다.

“따르르르릉”

밤 9시. 이 시간에 대표 전화라니. 받아야 하나 싶었지만 이 또한 하나의 업무이기에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입소 단체 친구가 아파서 전화했나?’

갑작스러운 전화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감 속에 수화기를 들고 안내 멘트를 뱉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웅성 웅성한 소리가 커서 다시 한번 되물었습니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잘 안 들려서요. 조금 더 크게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시끌벅적한 소리 사이로 질문이 튀어나왔습니다.

“지금 하늘에 달이 있는데요. 그 옆에 엄청 밝은 별이 있어요. 그 별이 뭐예요?”

전화의 주인공은 지금 숙소에 있는 친구들처럼 앳된 목소리였어요.

처음 겪은 상황에 당황스러웠고 애써 가졌던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 기색을 황급히 숨기고 다시 한번 되물었습니다.

 “궁금한 천체가 움직이나요? 달 어느 쪽에 있나요?”

“움직이지 않고 반짝거려요. 달 위 쪽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도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여러분 만약 ‘저 밝은 별은 뭐지, 너무 궁금해’ 하는 호기심이 든다면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일단 움직인다면 둘 중 하나 일 것입니다.

빨간 불빛을 낸다면 비행기고 빨간 불빛이 아니라면 인공위성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데 내 궁금증을 자극시킬 밝은 천체라면 십중팔구 별이 아니라 행성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요, 사실 질문을 듣자마자 단 번에 어떤 천체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날은 금성과 달이 아주 가까이에 날이었습니다. 재 빨리 뛰어가 본 하늘에 눈썹 모양의 달과 별처럼 빛나는 금성이 보였습니다.

별자리 관찰 프로그램을 켜 한 번 더 확인하고 통회를 이어갔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달 위쪽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건 금성입니다. 별 아니라 행성이에요. 혹시 더 궁금한 점 있나요?”

“야, 저거 금성이래!”

“그럼 별 아니잖아. 내 말 맞잖아!”

시시비비를 가리는 귀여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살며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를 가지게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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