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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토끼 Jan 08. 2024

선생님 진짜예요?

저는 우주를 테마로 한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합니다. 캠프에 방문한 청소년에게 수련 활동을 제공하는 일을 하죠. 낮에는 스티로폼을 이용해서 고무줄 로켓을 만들거나 망원경을 조작해 보는 등 체험 활동을 하고 밤에는 함께 별을 봅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나로도’라는 다리가 놓인 남쪽 섬입니다. 도심에서 수 십 킬로 미터 떨어져 있어 별 보기 좋은 곳이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오늘은 조금 떨어진 다른 지역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 온 친구들과 함께 토성을 보았습니다.

먼저 레이저 포인트를 이용해 하늘에 토성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어요. 하늘로 쭉 뻗은 초록빛에 감탄하다가 포인트 끝에 실망합니다. 토성을 맨 눈으로 본다면 조금 커다란 밝은 점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조금 다르죠.

아이들 중 하나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저게 토성이라고요?”

“네, 맞아요. 망원경으로 한 번 봐 볼까요?
망원경 관측 시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망원경은 눈으로 봐주세요. 손으로 잡으면 틀어집니다. 여기선 살짝 움직이지만 하늘에선 완전 다른 곳을 볼 수 있어요!

둘째, 핸드폰은 끝나고 나갈 때까지 잠시 넣어주세요. 별을 보려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야 해요. 핸드폰 불빛은 너무 밝아 별을 보는 데 방해됩니다.

다 본 친구들은 숙소로 돌아가서 쉬면 됩니다. 알겠죠? 잘 지켜줄 거라 믿어요. 그럼 한 줄로 서서 관측할게요. 밀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유의 사항을 전달하고 관측을 시작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조심히 다가와 망원경에 눈을 대고 봅니다.

1초, 2초, 3초.

집중하다 보면 이윽고 고리가 보입니다.
토성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탄성을 내뱉는 친구,
생각보다 작게 보이는 토성에 아쉬워하는 친구,
보는 것은 관심 없고 빨리 숙소에 가고 싶은 친구.

기다리는 모양도 각색입니다.

밤하늘을 보며 신기해하는 아이,
친구랑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하는 아이,
자신의 차례가 언제 올까 셈하는 아이.

망원경을 한참 들여다보던 친구가 내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진짜예요? 진짜 토성 맞아요?”

순수하게 묻는 얼굴에 장난 끼가 발동했습니다.


친구에게 작게 속삭였어요.

“이거 비밀인 데 말이야. 사실 스티커 붙인 거야!”


비밀이라는 말은 잊은 채 앞서 가던 친구에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봐봐, 내 말이 맞잖아! 이거 가짜래! 스티커래!”

놀란 얼굴로 친구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제게 몰려듭니다.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도 당장 진실을 말해 달라는 표정으로 묻습니다.

진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이거 진짜 토성 맞아요! 장난친 거예요.”

아이들이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하는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티커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에 모두가 즐거운 듯 웃습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웃음소리에 피곤함이 사라집니다.

밤하늘을 보며 기뻐할 아이들 얼굴에 오늘도 날씨가 맑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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