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늦지 않았어
나는 러닝을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렇다.
스포츠 실력은 10대 때 갈고닦아 성장하고 20대 중후반이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실력이 후퇴한다는 것.
물론 순발력, 상황판단력 등이 중요한 e-스포츠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뛰어보고
또 잘 뛰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며 느낀 점은
엘리트, 마스터즈 여하를 막론하고
마라톤의 최전성기는 30대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귀납적으로 증거를 대보겠다.
증거 1.
대회에서 공표하는
마스터즈 선수들의 연령별 기록을 보면
20대 선수들보다
30대 선수들의 기록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증거 2.
러닝 모임에서 달리기를 하다 보면 느끼는데
잘 뛰는 동생들보다 잘 뛰는 형들이 더 많다.
증거 3.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형님이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 7분 20초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을 당시
나이는 서른이다.
해외라고 다를까?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인 엘리우드 킵초게 형님이
2022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분 9초의 기록을 세웠을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이들의 기록을 나이와 겹쳐보면
괜스레 가슴이 더 뭉클하고 경외롭다.
절대 내가 늙어서 그런 건 아니다.
여성호르몬 때문인가?
그렇다.
마라톤은 엘리트 선수든 마스터즈 선수든
30대가 팔팔한 20대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
몇 없는 스포츠라 할 수 있겠다.
이유는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의 특성을 파고들면
과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진 않고.
귀납적으로 결과만 봐도 충분히 설득력 있잖아?
나는 이런 달리기가 좋다.
30대의 노련함과 연륜.
그리고 적지 않은 시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겪었을 고통들
그 속에서 정립한 고통을 대하는 저마다의 방법.
삶을 통해 고통의 역치를 높여온
그들의 인내심에 존경을 표한다.
비록 러너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일지라도,
그가 살아온 삶을 겹쳐보면
러너의 한걸음 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그 과실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나는 달리기가 좋고
달리기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