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03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에 몇 없는 바다를 인접한 항구 도시로 사람도 많지 않고, 일도 모스크바만큼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모스크바로 떠나 항상 회사에는 일손이 부족했다.
인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른 해 넘게 회계 일을 해 왔으며, 지금은 작은 외국 합작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수석 회계사라는 직함을 받은 그녀는 출근하면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면 사무실에서 풍기던 지독한 담배 냄새와 시끄러운 전화 소리가 멀어졌다.
뜨거운 홍차를 한 잔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졌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올라갔다.
책상 위에는 회사에서 얼마 전 구매해 준 최신형 컴퓨터와 두 개의 커다란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작고 어두운 화면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의 쾌적한 업무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침침한 눈과, 높은 혈압, 심지어 얼마 전에는 관절염으로 3등급 장애 판정을 받은 몸을 이끌고 힘들게 출근하는 것에 대해 자기 급여가(비록 장애수당을 받지만) 박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얼마 전 컴퓨터를 설치할 때 it 직원이 설명해 준 재택근무를 위한 원격시스템을 알게 되어, 추가근무 수당을 위해 컴퓨터를 항상 켜두고 다녔다.
홍차를 다 마신 그녀는 업무를 위해 계산기와 노트를 꺼냈다.
외국에서 온 관리자는 종종 일을 재촉했다.
보고서가 늦는다거나, 재고 방식이 다르다거나, 마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모스크바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했다.
러시아어 발음은 딱딱했지만 알아듣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인나는 그가 회계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시간을 들여 확인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고, 그는 항상 서둘렀다.
그래서 그의 지시를 그의 러시아어 실력을 핑계로 미루었다.
“당신은 아직 러시아어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업무지시가 명확하지 않아 제가 이해를 못 했을 뿐이에요!”
그 이후에는 외국인 관리자가 업무지시를 구두와 이메일로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인나 세르게예브나, 지난주에 말씀드린 재고 차이 건 확인했나요?”
인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확인했어요.”
“그럼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주 간단해요. 10번 계정 잔액이 41번으로 잘못 반영됐고, 60번 정산이 62번 하고 안 맞아서 생긴 차이예요. 거기에 76번까지 엮여 있으니까 당연히 재고가 안 맞죠.”
관리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회계코드로는 말하면 저에게 아직 어렵습니다.”
인나는 한숨을 쉬었다.
“러시아 회계 공부는 왜 안 하시죠? 관리자의 기본 아닌가요? 회계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거예요.”
관리자의 표정이 굳으며 말했다
“저는 회계 담당자가 아니라 관리 책임자입니다. 그래서 설명을 요청드린 겁니다.”
인나는 계산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설명했잖아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관리자는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인나 세르게예브나.”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낮았다.
“제가 당신 상급자입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드 번호만 나열하면 제가 이해 못 할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인나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럼 공부하셔야죠.”
관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일부러 저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곤란하다니요?”
그녀는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전문 용어를 설명한 건데요.”
“아니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를 엿먹이시는 겁니다.”
방 안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인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저는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시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타닥. 타닥.
관리자는 몇 초 동안 서 있다가 결국 돌아서서 나갔다.
관리자가 다시 인나에게 찾아가서 서류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인나 세르게예브나! 지금이 벌써 6월 15 일이 넘어가는데 왜 아직 5월 회계 마감이 안된 걸까요? 오늘 안에는 마감을 해야 한다고요! 심지어 5월은 연휴도 길었잖아요!”
“여기는 러시아라고요! 러시아는 연마감만 제때 하면 되니 재촉하지 말아요!”
“그럼 외국합작법인에서 일하지 말아야죠!”
“지금 당신이 재촉해서 더 못하고 있는 거니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회계는 엉덩이로 하는 일이라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자가 업무과 과중한 것을 보인다고 인력을 보충하겠다고 하며 크리스티나라는 신규 직원을 충원해 주었다. 모스크바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데 아픈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어리고 예뻐 보였다. 외국인 관리자가 자신의 흑심을 채우기 위해 채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업무연락은 많은 자신을 배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크리스티나, 경력이 있으니까 알아서 잘할 수 있겠죠? 웬만한 건 스스로 처리하세요!”
그녀의 업무 대부분을 크리스티나에게 넘겨주었다.
여느 날처럼 외국인 관리자는 회계 보고서를 요청했다.
하지만 바로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항상 말했잖아요! 업무연락을 할 거면 최소 1시간 전에 이야기해 줘요!
그는 한참 동안 업무에 대해 순서를 배분하는 방법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갔다. 그리고는 5분 뒤에 그가 아까 자신이 요청한 서류를 출력해서 들고 왔다. 이것 봐요 1시간이 걸릴게 아니라 그냥 프린트만 하면 되는걸! 5분도 안 걸리는 일이잖아요!
“크리스티나가 했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를 책상 위에 놓았고 나갔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인나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숫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계산기를 눌렀다.
타닥.
숫자가 틀렸다. 다시 계산했다.
타닥. 타닥.
잠시 후 관리자가 문 앞에서 말했다.
“인나 세르게예브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서류 뭉치를 들고 있었는데, 위쪽으로 누군가의 증명사진이 살짝 보였다.
“컴퓨터… 사용 안 하시면 크리스티나에게 줘도 될까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아니요.”
그녀는 컴퓨터를 보지 않은 채 계산기만 두드리며 관리자에게 말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어요.”
관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혔다.
두 개의 모니터는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열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계산기를 들었다.
타닥. 타닥.
퇴근할 때, 인나는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