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R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소M Mar 11. 2021

주방이 없어지는 세대

전에 없던 라이프 스타일을 짐작하는 일일




우리 집에서

방이 사라질지 모른다



인테리어의 꽃은 주방이다.

깔끔한 상부장과 하부장으로 감싸인 물이 잘 빠지는 싱크대와 현대 기술을 대표하는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 같은 화구, 냉장고 같은 저장시설 그리고 매끈한 식기류들이 놓이면 그 집의 살림 규모가 짐작된다.


@gallica 19~20세기 프랑스 농가의 주방



우리 삶의 근간을 의식주로 축약할 수 있다면, 주방은  중 둘인 먹고사는 걸 대표한다.

주방은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사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생활과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민낯이다.

만약 특정 시대상이 궁금하다면 그 시대의 주방을 찾아보면 된다. 하다못해 찬장에 고이 모셔진 향신료나 후추를 두고도, 교역과 무역에 대한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곳. 주방은 우리 삶을 대표한다.




@출처 미상, 오래된 개수대(년도 미상)를 세면대로 변경한 인테리어




주방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주방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역할이 계속 그렇게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출처 사진속, 최근에 봤던 가장 작은 부엌(업무용 데스크에 부속 가구 취급을 받고 있다)과 가장 큰 주방



현대 주거공간에서 주방은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우선 생활 반경이 도시로 응축되면서 주방은 더 이상 "방"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도시에서 공간은 비용이고 시간은 가능성이다. 가능성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낭비 목록 첫 줄에는 주방이 놓인 듯했다.


최근 인테리어나 매물 소개 사진 속, 주방은 더 이상 분리된 공간으로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중요도도 크지 않게 꾸려진다.

특히 집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주방의 존재는 급속도로 작아졌다. 작은 집 매물 소개에는 화구나 개수대의 언급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주방이 작거나 비중없이 인테리어된 공간들




우리 집엔 주방이 필요 없어요



견적을 문의하러 강서구에 위치한 싱크 공장을 찾았을 때였다.

내 앞의 중년 남자는 운영 중인 원룸 건물의 주방 싱크대 교체를 의뢰했고, 사이즈 문제로 고심하던 차였다. 아저씨는 본인 건물 싱크대의 정확한 사이즈를 몰랐는데 어떻게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무조건 작은 걸로 바꾸겠다는 아저씨가 답답했던 업체 사장이 그런 싱크대에서 어떻게 밥을 해 먹냐고 설득하자, 아저씨가 답했다.


"요즘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해 먹나요? 안 해 먹어요"


아, 그런가?

아니 그러면 교체는 왜 하냐는 업체 사장의 높은 톤에 반박에 평온한 톤의 목소리가 답했다.


"인테리어지유"



내가 살던 집의 인테리어도 이런 느낌이었다 @구글 이미지 스톡


파리에서 혼자 살 때 나도 바게트 빵에 잼 혹은 꽁피나 떼린느(으깬 고기쨈)같은 걸 발라먹거나 샐러드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더 많았다.

이 글을 쓰는 조차 주방 화기구를 거의 쓰지 않던 셈이다. 그런 나도 집을 보러 다닐 때 주방 화기구와 위생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기는 했다. 엄마가 말하기로 주방은 그 집의 얼굴이니까. 

주방의 실제 쓰임보다 인테리어적인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던 셈이다. 



괴거로부터 현재까지 주방의 진화: 개수대의 재질은 여럿이다. 주로 돌, 도기, 스텐인리스를 사용한다.



각 주방은 시대와 문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주방은

이야기의 중심이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 인구 집중으로 사회가 달라졌다. 그에 따라 주방도 진화했다.

널따란 공간에서 밀도 낮은 공동체로 생활하던 사람들은 좁은 도시로 모여 들었다. 그러면서 시골집 특유의 커다란 개인 화덕과 넉넉한 주방 공간을 포기 했다.

그래서 19세기 프랑스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발자크의 소설 속 주방은 공용이다. 발자크는 등장 인물들을 언제나 공용 주방으로 모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 건물에 개수대가 있고 화덕이 있어 음식이 마련될 공간이 그곳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난방 기술이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던 시대상이 보태졌다. 화덕이 놓인 주방은 건물에서 제일 따뜻한 곳이다. 음식이 놓이고 온기가 채워진 주방을 중심으로 삶이 꾸려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는게 당연했다. 공간이 바뀌고 삶이 달라져도 주방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21세기에도 주방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을까



20세기 프랑스 노동자 주택에 보급되어 있던 석탄 스토브의 흔적, 당시에는 난방역시 목재나 탄을 때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good time stove co. 21세기 미국인들이 재해석해서 만든 석탄 스토브 조리대



주방 인테리어를 찾아 보다가, 빈티지 스토브를 제작하는 미국 업체를 찾았다.

사실 이 비슷한 것을 전원생활을 하는 지인 집에서 본 적이 있다. 현대식 좁은 공간을 벗어난 전원주택에는 다시 옛것의 것과 비슷한, 그러나 안정성과 효율성이 훨씬 월등한, 화목난로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주방은 시대나 문화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과 함께 순환한다는 뻔한 결론이 나오는 걸까.


과거와 우리가 같다면 무엇이 같고 다르다면 또 무엇이 다른지 쏟아지는 정보 속에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우리가 궁금하다.

가스레인지보다 인덕션(전기레인지)을 선호하고, 오븐보다 전자레인지를 선호하는 그러면서도 작지만 세련된 주방을 인테리어로 갖고 싶은 그런 삶의 밥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15가지 사회적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