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저금하는 시간
긴 방학이 시작됐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시간은 천으로 뒤덮여 있는 시계처럼 흘렀다.
8월 징집을 알리며 울려 퍼지던 나팔 소리마저 멎자, 골목에는 조용한 기도 소리만 울렸다.
열두 해를 살았지만, 이렇게 지루한 계절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서 큰 소리가 나는 곳이기에, 틈이 나면 우체국 앞으로 갔다. 무거운 표정으로 줄을 선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걸 구경하며 매일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날도 별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마을을 돌고 돌다가, 언덕 꼭대기 몽포르드 가 쪽으로 올라가게 되었을 뿐이다.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언덕 위 좁은 길 끝, 낡은 돌담 너머에 회색 머리가 보였다. 몽포르드 부인이었다.
잔뜩 껴입은 회색 숄 사이로 바늘같이 마른 손이 나와서 무릎 위에 얹혀 있었지만, 시선은 담장너머 길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뭘 하고 계시나요?”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누군지 확인하려 크게 뜬 눈가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우체부지. 오늘은 좀 늦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체국에 직접 가보시는 건 어때요? 제 어머니도 매일 그러세요.”
그녀는 천천히, 작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며 한 손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보다시피, 내 다리가 말썽이란다. 예전 같지가 않거든. 저번에 늙은이 조바심으로 한번 그렇게 다녀오다 우체부를 놓쳤지 뭐냐. 때론 기다리는 게 빠르기도 하단다.”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빠르게 달릴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다림이 무엇인지는 안다.
언니는 기다림이란 매일 밤 엄마가 짓는 한숨의 무게, 아빠가 보낸 편지에 있던 물자국이라고 했다.
그리고 매일 밤 언니 방문 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섞인 울음소리기도 했다. 그것과 비슷한 무게가 정원에 놓인 낮은 의자에도 있었다.
그 다음 말은, 거의 저절로 나왔다.
“…그럼 제가 다녀올까요?”
그녀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줄 수 있겠니?”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도 할 일이 없거든요. 어차피 마을 한 바퀴 도는 건 일상이라서 금방 다녀올 수 있어요.”
그날부터, 작은 임무가 주어졌다.
편지를 들고 돌아오면, 부인은 늘 목례를 하며 봉투를 건네받았다. 마치 정식 우편배달부를 대하듯이.
그리고 쿠키가 대접됐다. 나는 부인이 편지를 읽는 동안 딱딱한 쿠키를 우유에 적셔서 먹다가 저녁식사 시간을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내가 매 식사시간을 놓쳐 혼이 났다는 걸 부인도 알게 되었고, 그다음부터 쿠키는 동전으로 바뀌었다.
“훌륭한 배달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이지. 이게 너의 첫 수당이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눈으로 웃었다.
유리병에 부인이 주는 동전은 점점 쌓여갔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부인은 봉투를 열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들렌, 미안하지만, 편지를 읽어줄 수 있겠니? 이제 글씨가 점점 잘 안 보이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심스레 봉투를 뜯었다.
<8월 16일, 생캉탱 근처
어머니, 저는 건강합니다. 이곳은 전선에서 멀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옆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 견딜 만합니다. 할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이 이런 거였을까요?>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을 살짝 쥐었다.
“내 아버지는 1869년 메츠 근처에서 전사했단다.
그리고 이제 내 아이를 다시 기다리고 있구나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편지를 전할 때마다 한 줄 한 줄, 조심스레 마음을 담아 읽었다.
계절은 지나가고, 소식은 짧아졌다.
때론 한 달이 지나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부인은 햇빛 쪽으로 몸을 조금 더 기울이고 말했다.
“오늘은 바람이 독하구나. 이럴 땐 편지가 늦어지지.”
그런 날엔, 나도 가만히 그녀 곁에 앉아 아무 말하지 않았다.
1918년 11월, 어느 맑은 아침.
나는 부인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손에 쥔 종이를 내밀었다.
서둘러 온 걸음에, 숨이 차올랐다.
“왔어요! 왔어요, 부인! 샤를 씨한테서요. 전보예요. “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펼쳤다.
하지만 손가락이 미처 내용에 닿기도 전에, 나를 바라보았다.
“… 네가 읽어주렴, 마들렌.”
종이를 다시 받는 손이 떨렸다.
전쟁은 끝났다. 확신이 든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첫 문장을 읽기 전, 그런 생각들을 되뇌며 입술을 꾹 아무렸다.
그리고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 전쟁이 끝났습니다.
저는 이제 돌아갑니다. 곧 뵙겠습니다.
샤를>
문장이 끝나자, 부인은 나를 꼭 껴안았다.
나는 놀랐지만, 어느새 나도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우리는 소리 없이 울었다.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렸던 것이 이렇게 무겁고 따뜻한 기쁨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날, 부인은 내 손에 마지막 10성팀을 쥐여주며 말했다.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줘서 고맙다. 네가 내게 매일 가져온 것은 종이가 아니라 따뜻한 말이었단다. 그리고 네 덕에 나는 이 긴 기다림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백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