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이 멈추는 정거장
전쟁이 끝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마들렌은 여전히 남편을 대신해 트램 검표원 제복을 입고 있다.
남편의 마지막 편지는 이프르 근처 참호였다. 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실종’이란 상태는 전사보다 훨씬 무거웠다. 매일 트램을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며, 마들렌은 자신도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번 정거장은 쌩-클로드 고아원입니다”
오늘도 정류장에는 한 소년이 서있었다.
회색빛 셔츠에는 짝이 아닌 것 같이 큰 단추가 달려 있었고, 보풀이 일어난 헝겊 가방에는 간혹 종이뭉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전쟁고아’ 마들렌은 속으로 가만히 그 단어를 읊어봤다.
소년은 10성 팀짜리 동전을 내밀며 말했다.
“쌩-클로드 병원까지 가죠?”
그다음은 침묵이다. 트램이 종점에 가까운 고아원을 출발해 도심을 가로질러 병원으로 갈 때까지 인파가 물결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동안, 소년은 창밖만 바라보았다. 마들렌은 물결치듯 넘실대는 승객들 사이로 소년의 모습을 슬쩍 확인하고는 했다.
갑자기 소년이 궁금했다. 고아원과 병원을 오가는 노선은 하나뿐이고 마들렌은 유일한 검표원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차편에서는 단 한 번도 소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병원으로 가는 거지? 그런데 돌아올 땐 어떻게 하니?”
소년은 어깨를 으쓱였다.
“걸어요. 늦는 건 괜찮으니까요.”
“고아원에 통금시간 같은 게 있지 않아?”
소년은 웃었다.
“야단 조금 맞는 거죠. 수녀님들도 속으로는 다 알고 계세요. 모르는 척하실 뿐이에요”
마들렌은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같은 길을 달리지만 둘은 달랐다. 소년에게는 목적이 있고 행선지가 있지만 마들렌에게는 없다. 마들렌에게는 돌아가는 차비가 될 동전이 있지만 소년에게는 없었다. 회색 도시 위로 희미하게 스치는 태양이 유리창에 스며들고 둘은 말없이 빛을 바라봤다.
빛처럼 시간도 흘렀다.
둘은 이제 안부를 건네는 사이가 됐다. 마들렌과 소년은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게 둘을 친밀하게 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소년은 요금을 지불하고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종이로 접은 비둘기 하나를 내밀었다.
“동생이 만들었어요. 비둘기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준대요. 누나한테도 좋은 소식을 가져다줬으면 좋겠어요”
허리에 찬 주머니에 소년이 준 요금을 넣던 마들렌은 순간 주머니를 떨어뜨릴 뻔했다.
종이비둘기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두 손으로 가만히 받아 들며 물었다.
“고마워. 동생은 좀 어때?”
“이제 곧 퇴원이에요. 다음 달이면 다시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상기된 표정으로 재잘대던 소년의 눈빛은 문장을 마친 뒤에 잠시 흔들렸다.
“근데, 아직도 아버지한테 연락이 없어요.”
소년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숙였고, 마들렌은 아무 대답 없이 말을 가슴에 삼켰다. 소식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어른인 그녀에게도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하물며 저 어린아이들은 어떨까.
소녀가 퇴원하는 아침, 병원 앞 정류장에 트램이 섰다. 승객들 사이로 검표복을 벗은 마들렌이 내렸다. 그리곤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소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소년이 자기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다가 마들렌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나?”
“오늘은 나랑 같이 트램을 타러 가자.”
“왜요?”
“우리 모두 아무도 없으니까, 잠깐이라도 같이 있으면 어떨까 해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
그렇게 다시 백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