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하루를 때우는 나머지
1924년 10월, 파리
레옹 코르도니에는 오늘도 포르트 드 클리냥쿠르 공사장에서 하루를 마쳤다. 전쟁이 끝난 지 5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파리 곳곳에는 움푹 파인 도로들이 남아있었고, 그에 따라 일자리도 사람도 넘쳤다.
파리에서는 공사장 인부로만 일해도 벌이가 제법 좋다는 소문은 레옹이 살던 브르타뉴 지역까지 돌았다. 물론 포탄으로 황폐해진 초지를 다시 일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보다 일자리가 부족했다. 전쟁이 끝나자 물가는 두 배이상 올라서 예전처럼 일했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시로 쫓기듯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 레옹은 그렇게 밀리듯 파리에 왔다.
고향마을을 함께 떠난 미셀은 운이 좋게 친척이 일한다는 공장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건 레옹처럼 자기 한 몸 믿고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오지 않는 행운이었다.
날이 좋을 때는 하루 일당 14프랑 전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비가 자주 오는 계절에 일당은 반토막이었다. 오늘 받은 일당으로 미셀에게 빌린 방값을 갚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10성팀-프랑 동전 하나가 전부일 거다.
레옹은 지쳤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파리의 생활은 받는 임금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만 고향으로 그만 돌아갈까.’ 갑자기 어머니가 해주는 수프가 먹고 싶어졌다.
길을 무작정 따라 걸었다.
레옹이 오늘 일한 옛 파리의 성문인 클리냥쿠르에서 중심 파리까지는 일자 대로가 나있다. 이 길을 따르면 온 유럽의 돈들이 몰려온다던 파리 증권사, 파리의 모든 식재료가 모인다는 레알 시장 그리고 고향으로 닿는 기차역이 있다.
길은 굴곡 없이 평평하고 매끈하다.
레옹은 이런 길을 만드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일단 흙이 나올 때까지 파헤치고 또 파헤친다. 그리고 다시 다진다. 그 위에 돌을 쌓아야 평평한 길이 된다.
이렇게 다져진 길을 밟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이 길도 언젠가 레옹이 징으로 내리치고 석회가루를 부어 단단하게 고정시켰던 조각일 것이다. 길은 벌써 새로운 파리의 일부가 됐다. 양옆으로 물결치듯 요동치는 화려한 조명의 신시가지와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됐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레옹은 자신이 마치 이 풍경에 맞지 않는 못조각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수프 한 그릇 25성팀>
길가의 노점에서는 큰 솥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감자와 양파를 풀어 만든 수프가 몽글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레옹은 공연히 주머니 속의 남은 동전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파리에서 고향 같은 인심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때, 수프 장수가 한 손으로 그를 불렀다.
“어차피 오늘은 마감이다. 당신 하나 퍼준다고 망하면 장사는 접어야지.”
레옹은 잠깐 망설이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잠시 후, 깡통 그릇에 수프가 담겼고, 숟가락이 따라왔다.
레옹과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가 옆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오늘도 반나절이었지?”
레옹은 고개를 끄덕이며 국물만 마셨다.
말보다 배 채우는 게 먼저였다.
수프는 진했다. 양파는 거의 으깨져 있었지만 덤으로 얹어진 딱딱한 빵이 눅진하게 붙어서 씹는 맛이 있었다.
고기는 없었지만 따뜻했고, 배를 채우는데 충분했다.
그는 마지막 한 입을 넘기고 나서,
손에 남은 10성팀짜리 동전 한 개를 조용히 그릇 옆에 내려놓았다. 식사 가격에는 못 미치지만 그가 가진 전부이자 따뜻한 음식에 보내는 찬사였다.
상인은 말없이 동전을 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레옹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힘내, 젊은 친구. 이제 배를 채웠으니 어디든 가라고. 그 나이 때는 뭐를 해도 좋은 법이야.”
갑자기 올해까지만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돌아가도 농번기가 끝난 시골마을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거다. 그보다 여기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아보자고 생각하자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백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