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을 덮는 흰 연기

어느 페인트공의 휴식시간

by zincsparis


1921년,

에펠탑 철제 보 위,


강 옆에 철로 된 구조물이라니 이것은 재앙이다.

아니, 축복이다. 덕분에 밥은 빌어먹고 사니까. 펠릭스는 생각했다.


아침 녘 에펠탑은 거의 젖어있다.

비가 내렸거나 안개가 끼거나

물기를 머금은 철탑 위로 햇빛이 반사되며, 녹이 슬어 빛바랜 부분도 황금처럼 빛나 보인다. 솔직히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무국 놈들은 조그마한 하자에도 벌벌대며 야단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은 부식에 취약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오늘따라 거센 동풍에 철에 붙어야 하는 페인트가 오른쪽 뺨으로 달라붙었다.

해가 떴는데도 주변은 희뿌옇다. 쉬이 걷히지 않는 게 안개인지 아니면 파리 동쪽 공장지대에서 몰려오는 매연인지 콧속까지 짙게 배인 페인트 냄새에 확인할 수가 없다.

펠릭스는 가만히 주변을 살폈다. 바로 옆 줄에 매달린 레옹을 제외하고 감독관은 아무도 없다.


"어이 펠릭스 조심하라고. 반장이 보면 당신 모가지야"


구겨진 골루아 담배.

손끝은 까맣고 손등도 햇빛에 그을려 매끈한 담배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순간 눈을 흘깃하던 레옹도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손을 내밀며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한 대 주게. 오늘따라 마담 에펠이 더 고약하네. 예쁘게 분칠 좀 해주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에잉"

"마담 에펠이고 뭐고, 자네 요즘 담배 한 갑이 얼만지는 아나?"

"글쎄? 한 30성팀 하나?"

"언제 적 소리를 하고 있나. 그건 전쟁 중에 적십자에서나 팔던 반갑 담배나 그랬지. 지금은 그 두 배라고"

"아 그럼 달아둬. 내가 내려가서 줄게"

"그 소리만 벌써 몇 번짼지…"


턱에는 녹물 자국.

코끝엔 누런 페인트 한 점.

쓴소리를 하면서도 펠릭스는 다시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뱃갑은 안전줄에 눌려 늘 찌그러져 있고, 성냥은 체온에 녹아 눅눅했다. 하지만 하늘 높이 바람을 맞으며 피우는 담배는 마치 세상 전부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라서 펠릭스는 매번 이렇게 담배를 가져오곤 했다.


"이놈의 탑은 매번 새로 칠을 해도 금세 다시 녹이 스네. 황금색이니 뭐니 하는데 그냥 녹슨 철탑이야"


레옹의 푸념소리를 배경으로 펠릭스는 연기를 깊숙이 들여 마신다.

불빛이 빨갛게 타오르고 흰 연기가 뿜어졌다 사라지면, 발아래 흐르는 센강과 몽마르트르 언덕이 피어오른다. 발밑으로 수천수만의 삶이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걸 바라보며 매달려 있는 순간은 나쁘지 않았다.

그게 펠릭스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저 아랫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있는 줄도 모르겠지"

"모르지. 다들 앞만 보니까"

"이 놈의 탑은 칠해도 구멍만 생기는데 왜 자꾸 여기에 이렇게 페인트를 붓는지"

"자네 월급도 받아도 받아도 구멍만 생기는데 계속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주거니 받거니 주고받으니 벌써 한 개비가 끝이다.

다시 붓을 든다.

페인트 양동이가 햇빛을 받아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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