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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13. 2018

초코 아이스크림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단 한 사람


나는 자주 아프다. 지병이 있지만 큰 병은 아니다. 대신 잔병치레가 많고 한 번 아프면 오래 아프다. 작년 가을에는 9월 중순부터 한 달을 앓았다. 그리고 올해는 10월 초부터 쭉 앓고 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술을 퍼마시고(때로는 그 다음날도), 잠 잘 시간을 아껴 글을 쓰고, 회사에선 늘 시간에 쫓겨 동동거렸으니 아플 때가 된 것이 분명하다.


처음은 배탈로 시작했다. 전 날 먹은 회가 잘못이었는지 구토, 설사, 발열, 오한 등 장염인지 노로바이러스인지 모를 증상들이 나타났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이기적이지만 아플 때는 엄마를 찾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 엄마에게 항상 놀라운 것은 제 맘대로 살다가 병이 난 딸을 매번 극진히 간호해준다는 점이다.


간밤에 앞뒤로 뿜어댄 이야기를 하자마자 엄마는 혼자 분주해졌다. 우선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이고, 따뜻한 둥굴레차를 갖다주고, 아픈 배를 살살 문지르며 옛날 얘기를 해준다. 때마침 휴일에 여는 병원이 있어 갔다 오겠다 하니 자기도 같이 가자고 한다. 엄마가 아플 때, 난 한번도 병원에 동행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물론 나도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간 지는 좀 오래 되었다. 엄마는 아프니까 택시를 타자며, 택시비도 자기가 내준다 한다.


엄마의 카드를 뿌리치고 택시비, 병원비, 약값은 당연히 내가 결제했다. 하하 나도 그 정도는 버는 직장인이니까! 그렇다고 안심하면 경기도 오산. 대신 죽을 사달라 했다. 죽은 생각보다 비싸다. 엄마 찬스니까 단호박죽, 전복죽으로 알차게 두 개나 샀다. 돌아오는 길에 예쁜 옷가게에 들러 같이 쇼핑도 했다. 신상 가을 아우터 앞에선 아픈 것도 잠시 잊는 내가 참 한심하다. 엄마는 집에 와서도 죽을 알맞게 그릇에 덜어주고, 내 앞에 앉아 죽 먹는 것을 계속 지켜봐주었다.


자기 전엔 밤이 되면 약기운이 떨어질 수 있다며 타이레놀 두 알을 머리맡에 두고 자라고 했다. 타이레놀을 건네던 엄마는 아참! 하며 다시 약을 가져간다. 그리곤 타이레놀을 살짝 까서 다시 건넨다. 밤에 자다깨면 약을 까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면서. 그 땐 대충 흘려들었지만 새벽에 자다 깨서 약을 먹으려니 여간 요긴한 것이 아니다. 아 이런게 엄마의 사랑인가? 사랑이란 밤 늦게 먹을 타이레놀을 미리 살짝 까놓는 것.




어젯밤 꿈엔 엄마가 나왔다. 엄마랑 손을 잡고 어딘가를 걸어가는데 길가에 납치조심하라는 벽보가 붙어있었다. 꿈에서의 나는 분명 어른이었던 것 같은데도 그 벽보를 보자마자 너무 무서워서 큰 소리로 외쳐댔다. 엄마도 나도 둘 중 한 명만 잡아가면 안된다고, 잡아갈거면 우리 둘 다 잡아가세요! 하고 어이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다 큰 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왜 그래, 엄마가 어디 먼저 떠날 것 같아서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꿈에서의 나도, 자다 깬 나도 펑펑 울었다. 눈을 떠보니 내 방 침대였고, 내일 이브닝 출근을 앞둔 엄마는 저 쪽 방에서 잘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너무 슬펐다. 왜 슬픈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도 내일 눈 부으면 엄마가 걱정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또 눈물이 났다. 누군가가 나를 떠나는 상상, 그 누군가가 엄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해본 적이 없다.




스물넷에 첫사랑과 난 데 없이 헤어졌을 때, 집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무작정 집을 나왔다. 제일 의지하던 친구를 만나러 가며 그 와중에 엄마한테 카톡을 보냈다.

[엄마 나 헤어졌어요 친구 누구랑 놀다올게요.]

엄마는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잘 헤어졌다 날 것 찬 것 조심하고 재밌게 놀다오렴]

'날 것 찬 것' 그 사소한 한 마디에 또 우르르 무너질 뻔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는 새벽기차를 타고 무박삼일 이별여행을 떠났고 삼 일 동안 잠을 단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잠바에 모래만 가득 묻혀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궁리를 하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한 통 샀다. 나는 누구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이 녹는 게 너무 슬프고, 아이스크림을 뺏어먹으면 정말 화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의 그런 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때 헤어진 그 남자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아무도 나에게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겠지, 하는 비관에 빠져서 셀프 선물을 한 셈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새로 산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으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을 연 순간 못 보던 아이스크림이 있는 거였다. 그랬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 남자가 아니라, 엄마였다. 고작 이틀 집을 비웠을 뿐인데 엄마는 내가 돌아오는 날을 기억하곤 네가 좋아하는 초코 아이스크림 사두었으니 같이 먹지 않겠냐고 너무나도 살갑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집을 비운 날 중 하루가 어버이날이라는 걸 알았고, 그런 내색도 없이 초코 아이스크림을 내미는 엄마때문에 또 울었다.


고맙단 말도 못했다. 싫어 나중에 먹을래. 하고 방으로 들어왔을 뿐.




몇 년이 지나도 비슷하다. 내 방도 안 치우고, 반찬을 만들어 놔도 밥을 잘 안 먹고, 매번 늦게 자고, 친구랑 술 마시고, 그러다 보면 또 병이 나서 징징댄다. 오늘도 엄마는 이브닝 출근하기 전 내가 먹을 밥을 안쳤다. 출근하는 버스에선 [밥 뒤집어놔레이♡ 안 그라마 굳는다] 하는 카톡도 잊지 않는다. 얼른 밥을 뒤집고 나서 나는 또 철없이 생일선물로 바지를 사달라고 말한다. 생일에는 오징어튀김도 해달라고 말한다. 엄마는 바지도 사주고 오징어튀김도 해주겠다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말해보라고 한다. 참고하겠다고.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꿈이라 해도 엄마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너무 가혹하다.


꿈의 마술사가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꿈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늘 엄마와 행복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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